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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Jul 21. 2024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엔

닭곰탕

여름 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연중행사로 매번 왔다가는 단골손님이지만, 여름 감기는 좀 더 지독했다. 


몇 주 전, 밤중에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갔다가 침을 삼키는데 갑자기 목이 아팠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다시 한번 천천히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 혹이 생긴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팠다. 


또 시작됐네.


아침에 눈 뜨는 대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숨 자고 나면 좀 나아지기를 바랐건만, 그런 기적 같은(?) 치유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사실, 며칠 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피곤하면 양쪽 잇몸이 번갈아가며 붓곤 하는데 왼쪽 귀가 아픈 줄 착각할 정도로 그 부근에 멍울이 생겼다. 


설마 하며 눈 뜬 순간 역시 아니라는 걸 알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내과에서 약만 타와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코와 목에 직접적으로 약물을 주입하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병원에서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7.7도. 미열이 있었다. 

'아! 내가 아픈 게 맞는구나.'


이 정도로 병원에 잘 가지 않았던 나는 그제야 병원에 올만한 환자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의사 선생님은 "어디가 아파요?", "언제부터 그랬어요?"만 묻더니 코와 목에 네댓 번 넘게 온갖 약물을 쏘아댔다. 심지어 내 혓바닥을 밖으로 빼서 목구멍 깊숙이 약물을 투여하는데 혓바닥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밖으로 나온 적은 처음이라 부끄러웠다. 

거기에 더해서 요즘 보기 드문 엉덩이 주사에 목에 연기를 마시는 치료까지 했다. 


사흘 치 약을 타고 나오면서 '초기에 치료받았으니까 곧 낫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나답지 않게 병이 커질 때까지 버티지 않고 착실하게 병원에 갔으니까 당연한 보상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는 나의 저질 체력을 너무 건강하게 봤나 보다. 

온갖 약물 치료에 쓰디쓴 감기약을 먹었는데도 날이 갈수록 감기는 점점 심해졌다. 


미열, 목 통증부터 시작된 감기는 콧물, 코막힘, 마지막으로 대망의 기침까지 전부 한 바퀴 돌았다. 


그렇다. 

나의 감기는 절대로! 중간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한번 시작하면 갈 때까지 간다. 감기 바이러스가 더 이상 갈만한 데가 없어야 슬슬 낫는다. 


이런 식의 몹쓸 감기 패턴을 알기 때문에 초기에는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차라리 휴식을 취하고, 따뜻한 생강꿀차나 먹는 게 나았다. 


병원 가봤자 계속 심해질 텐데 귀찮게 뭐 하러? 같은 안일한 생각이 병을 더 키웠다. 

해가 갈수록 감기에 걸리는 빈도는 늘고, 잘 낫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기침은 저 멀리 부산의 엄마한테까지 들릴 정도로 심하므로 같이 사는 사람에게 민폐였다. 


남편도 나처럼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는지 작년에도 식겁했다. 


그렇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지금처럼 감기에 걸렸었다. 

그때는 석사 논문을 막 끝낸 뒤였다. 


최종 논문 심사고를 완성하고 난 뒤, 기다렸다는 듯이 감기에 걸렸다. 

심지어 코로나에 걸렸다가 다시 몇 주 뒤에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8월 한 달 내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나의 기침 소리는 계속되었다. 

급기야 기침을 너무 해서 배가 아플 정도였다. 


진짜 이 정도면 입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도가 없었는데 감기가 정점을 찍고 나서야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또 감기가 시작되자, 남편도 내심 긴장했나 보다. 


평소에는 별로 말수가 없는 남편이 병원에 갔는지, 약은 먹었는지,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처방전을 사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약사도 아니면서 과한 처방이 없는지 제 나름대로 꼼꼼히 알아본 모양이다. 


병원에 간 날부터 예정된 불행처럼 나의 감기는 점점 심해졌다. 

목 아픈 건 의외로 금세 괜찮아졌다. 

코 막힌 것도 입으로 숨 쉬면 되니까 견딜만했다.

쓴 약을 먹어서 입맛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기침은, 기침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감기에 걸린 시기가 본격적으로 열대야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에어컨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목수건을 하고, 이불을 덮어도 에어컨 때문인지 잘 낫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어컨 없이 자는 건 아예 잠드는 게 불가능했다. 

60년 만의 강추위에 태어난 1월생이라 그런지 유독 더위에 약한 나는 에어컨을 멀리할 수도 가까이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보다 더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 아무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닐까. 

정작 환자는 제 몸 하나 추스를 정신도 없기 때문에 옆 사람을 챙기기 힘들다. 

집 안에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힘들다. 꼭 간병을 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옛 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을까. 


흔하디 흔한 감기지만, 이게 해마다 반복되면 같이 사는 사람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점이 미안했고, 나의 저질 체력을 저주했고, 평소 몸관리를 잘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남편도 일하느라 힘들고 날씨도 더워져서 요즘은 평일에는 요리를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 때문에 남편이 다시 용주부로 변신했다. 


이제까지의 목, 코감기는 예고편이었다는 듯이 기침을 마구 해대자 용주부가 어디서 봐왔는지 닭곰탕을 해주겠다고 했다. 


나: 닭곰탕? 그거 힘들지 않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용주부: 아냐. 간단해.
나: 요즘 요리도 잘 안 해 먹어서 집에 있는 식재료가 없을 텐데.
용주부: 닭이랑 파만 있으면 돼.
나: 진짜? 

닭곰탕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뭔가 '곰탕'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푹 고아야 국물이 우러나지 않나?

그러려면 마늘이나 양파, 등등 삼계탕만큼은 아니어도 뭔가 부자재가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단순히 대파만 있으면 된다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용주부는 집에 아무것도(그 흔한 대파 한 단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퇴근길에 손수 마트에 들러 대파와 생닭 등을 사 왔다. 


그런데 그의 가방을 보고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약기운에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저건 찍어야 된다는 생각에 카메라부터 켰다. 


백팩에 튀어나온 대파 한 단.


남편은 외모에 관심이 없어도 깔끔한 차림에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러나 본인의 겉모습보다 용주부로서의 사명감이 더 컸나 보다. 


나: 꼴이 그게 뭐야? 큭큭.
용주부: 뭐가?
나: 꼭 대파를 그렇게 들고 와야 돼? 가방에 반으로 접어 넣지 그랬어.
용주부: 대파가 상할까 봐. 
나:...


할 말이 없었다. 

종일 일하느라 지쳤을 텐데 대파가 상할까 봐 가방에 그대로 꽂고 당당하게 지하철을 타고 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짠했다. 


퇴근 후 장을 볼 때부터 용주부 모드로 변신한 그는 오자마자 옷 갈아입을 틈도 없이 생닭을 손질하고 삶았다. 

조리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중에 레시피를 물어보니 생닭에 양파와 대파, 통후추 조금 넣고 푹 삶는다. 

그런 다음 익힌 닭을 일일이 발골하는 과정을 거친다. 


닭껍질을 싫어하는 용주부는 위생장갑을 끼고, 싱크대에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본격적으로 발골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불순물이라도 나오면 일일이 다 제가 하고, 먹기 좋게 손으로 찢었다. 

진하게 우려낸 닭국물에 토렴식으로 밥을 한 덩이 넣고, 그 위에 찢은 닭가슴살과 고명으로 대파를 송송 썰어 올리면 끝. 

마무리로 후추 두 번 톡톡 뿌리면 된다. 


간단하지만 완벽한 한 끼, 닭곰탕


닭곰탕엔 따로 반찬이 많이 필요 없다. 

묵은지 김치와 절인 오이 반찬이 끝.

오이가 없으면 김치만 곁들여도 된다. 

식초와 설탕 등으로 절인 오이는 특유의 닭비린내를 완전히 잡아주고, 식초의 새콤함이 식욕을 돋운다. 


나: (후루룩).
용주부: 맛있어?
나: 응! 국물이 깔끔하네. 속이 확 풀린다.
용주부: 많이 먹어. 또 있으니까 내일 점심 때도 먹고.


한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뜨끈한 닭곰탕으로 속을 풀었다. 

요리하느라 더운 주방에서 내내 닭 냄새를 맡으면 질릴 법도 한데 용주부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 절로 콧물이 났다. 

코를 훌쩍거리다가 풀다가 하면서 열심히 닭곰탕 한 그릇을 비워냈다. 

평소에 밥을 말아먹는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데 지금은 목이 부은 상태라 밥알이 적당히 닭국물에 퍼져서 술술 잘만 넘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 사이엔 후루룩 소리만 났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대화였다. 


그렇게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리고 나서 전날밤보다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귀신같이 감기가 뚝 떨어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감기가 한풀 껶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용주부는 내가 혼자 집에서 먹을 점심 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세상과 싸우러 출근했다. 

나는 원고 마감 때문에 드러눕지도 못하고 감기 바이러스와 싸웠다. 

약을 먹어야 하니 억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전날 먹고 남은 닭곰탕이 있어서 든든했다. 


불행하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간헐적인 기침을 한다. 

아마 용주부의 닭곰탕이 아니었다면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마감이고 뭐고 간에 계속 드러누워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밥심으로 이겨내고 어떡해서든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약에 취한 채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혹자는 그깟 마감이 뭐라고,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좀 쉬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게 불가능해서 억지로 일한게 아니라 내 성격상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누워 있어 봤자 편히 쉬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빨리 할 일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게 나았다. 


용주부의 닭곰탕은 일하다 중간에 끼니를 챙겨 먹는 번거로움을 줄여주었다. 

이틀 연달아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내가 잘 먹는 걸 보고 그 뒤로도 한번 더 해 주었다. 


닭곰탕을 밖에서 돈 주고 사 먹은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앞으로도 사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실, 닭곰탕이 아니어도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감기가 언젠가는 낫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개고생은 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고마웠던 건 맛있는 닭곰탕보다 그걸 준비해 주는 용주부의 마음씀씀이었다. 

굳이 닭곰탕을 해주지 않아도 죽 한 그릇 사들고 와도 고마웠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플 때 나를 챙겨주는 이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엔 약도 없다. 

시원한 것만 찾게 되는 요즘, 그래도 마음만은 늘 따뜻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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