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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Oct 27. 2024

남편이 요리하자 아내가 바뀌었다

2인가구의 명절상

내가 요리하기 시작하면서 ㅇㅇ의 짜증이 줄었어. 

여느 때와 같은 저녁, 남편이 요리한 짜장 소스에 밥을 비벼 역시 그가 만든 양배추 피클을 곁들여 먹는데 열중한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순간 입 안 가득 음식물을 삼키면서 "그건 그렇지."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생각이 스치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끝까지 파고들어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기에 그 말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이런 몹쓸 성격은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원흉이지만, 글을 쓰는 좋은 자질(?) 혹은 재료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단순히 남편이 요리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일이 줄어서 짜증이 준 걸까?


애초에 나에게 '요리 금지령'이 내려지고 남편이 용주부가 되어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유난히 음식에만 까다로운 남자와 음식 빼고 매사에 까다로운 여자가 함께 먹고사는 문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번 뭘 먹을지 정하는 일은 과거의 고통으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불안을 증폭시킬 정도로 스트레스였다. 나를 배려한답시고 모든 선택을 나에게 미뤄놓고 막상 먹기 싫은 건 곧 죽어도 먹지 않는 남편 때문에 지나치게 예민한 내가 폭발해 언성이 높아지고 그릇을 집어던질 정도로 개싸움이 발발했다. 


몇 번의 패자뿐인 싸움 끝에 우리는 극적인 협상을 타결했다. 

먹는 일 자체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던 나는 최대한 주방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그리고 정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면 즉석에서 메뉴를 정하지 말고, 일주일 치 식단을 짜기로 했다. 

매번 뭘 먹을지 입씨름하다 지쳐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나면 통장만 비고 만족도도 떨어졌는데 최대한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매번 철저하게 지킨 건 아니지만,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뭐 먹을까?' 하는 지긋지긋한 고민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 


내가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과거 실패한 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라든가 평균 이하의 체력을 가졌다든가 해서 불안한 상황이 오면 그 스트레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직장도 관두고, 인간 관계도 관두고, 대학원까지 관두고 거의 글쓰기에만 몰두해도 벅찼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에는 더위에 취약한 내가 한 달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아서 가뜩이나 비루한 몸뚱이가 더 약해졌다. 


어쩌다 몇 시간 요리까지 하고 나면 그날은 아무것도 못했다.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나 싶어 벌벌 떨면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혈압 높은 거 외에는 의외로 멀쩡했다. 


엄살이었나?

그렇잖아도 엄살쟁이라고 놀림받는데 정말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각자 고통의 강도를 견디는 정도는 다르지 않은가? 설사 남의 눈에 엄살로 비치더라도 내가 느끼는 고통은 별거 아닌 게 아니다. 자신을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는 짓은 그만하기로 했다. 


아무튼, 남편은 연휴나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용주부를 자처했고, 다행히 의외의 적성을 발견했다. 그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그도 뿌듯해했다. 

내가 요리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짜증이 준 만큼, 그도 요리를 통해 소소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동안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일이 많았는데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나지 않고, 하고 나서 맛있게 먹으니 그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먹는 끼니에 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겠냐만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한 두 달씩 쌓이니 부부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도 처음 도전하는 요리가 많아서 성공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의외로 맛이 괜찮으면 자존감이 양념 한 스푼만큼 올라갔다. 그런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니 요리를 억지로 하기보다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급기야 이번 추석에는 덥기도 하고 여러 여건 상 집에서 단둘이 조용히 보내기로 했는데 용주부가 일을 벌였다. 처음에는 추석 연휴 동안 먹을 갈비찜만 한다고 했는데 산적구이(내가 먹고 싶다고 함)에 육전, 동그랑땡까지 도전했다. 


 

들통 가득 갈비찜

 

그런데 이번 추석에도 좀 덥지 않았나. 

가뜩이나 더위에 취약한데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까지 걸려 기침하면서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었고, 가만히 있어도 더위 먹는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에어컨이 없는 주방에서 갈비찜이며 각종 전을 한다고 주방이 초토화됐다. 신문지도 깔지 않고 바닥에 앉아 휴대용 버너를 켜고 온갖 전을 만드니 기름과 밀가루 등으로 깨끗한 면적이 없었다. 


만들다 보니 점점 양이 늘어나서 손 큰 용주부는 무슨 제사 지내는 큰 집 마냥 음식을 해댔다.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용주부 혼자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각종 심부름과 조수 노릇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 더운 날 불 앞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음식하다 지친 용주부를 대신에 모든 뒤처리를 도맡았다. 


신문지도 깔지 않아서 바닥을 대충 물걸레질로 닦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음식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요리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설거지와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막대 걸레로 대충 휘휘 닦았다가는 온 사방이 기름기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결국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뜨거운 물에 세제를 풀어 원치 않은 대청소를 해야 했다. 


고질병인 좌골 신경통에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얼굴이 열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먹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다고 용주부를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 혼자 좋자고 한 것도 아니고, 힘들게 요리하느라 지쳐서 누워있는 사람더러 억지로 치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뒤, 용주부가 이틀에 걸쳐 만든 요리로 한 상 가득 명절상을 차렸다. 사진에는 없지만, 여기다 더해 스지탕까지 했다. 


흔한 2인가구의 명절상(산적, 육전, 동그랑땡, 갈비찜)

의외로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산적꼬치보다 육전이 히트였다. 만들 때는 손도 많이 가고 번잡했는데 파무침을 곁들여 먹으니 정말 별미였다. 


명절에 원하던 여행은 못 갔지만 용주부의 손 큰 명절상 덕에 풍성한 명절을 보냈다. 그 뒤로도 용주부는 쉬는 날 간단한 반찬이라도 만들어두려고 애썼다. 종일 집에서 일하는 나를 배려한 처사였다. 


용주부가 하지 못하는 날에는 당연히 내가 하고, 뒤처리도 모두 내가 한다. 먹는 시간이 제일 짧고, 만들고 치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물론, 만족감은 배로 크다. 


남편이 시간 날 때마다 용주부로 변신하면서 내가 짜증이 줄었던 건 요리에서 해방된 편함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란 인간은 기본적으로 귀차니즘이 몸에 배어 있어서 만약 그가 요리를 안 했더라면 대충 있는 대로 먹고 말았을 것이다.  게다가 집안일은 요리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내가 요리를 안 할 뿐, 상을 차리고 치우고, 밥하고 기타 집안일(청소, 빨래 등등) 하는 건 여전하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짜증이 줄은 건, 중요하지만 잡다한 이 모든 집안일을 나 혼자 감당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다. 


나: 용주부가 안 됐으면 어떨 것 같아?
용주부: 지금쯤이면 쫓겨나지 않았을까?
나: 미친 생존본능이 널 용주부로 변신시켰구나?
용주부: 아니라곤 말 못 하지.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지는 건 항상 나였다. 희생이 곧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으로 정작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하면서 우울증을 앓았고,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불안이 커졌다. 


남편이 나의 불안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른다. 아마 평생 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극 T 성향답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너의 불안을 없애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변명하듯 말할 때마다 "내 불안을 너보고 해결해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소용없을 거라는 핑계로 가중시키지는 마"라며 날 선 대립을 하던 지난날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용주부는 내가 원하는 방법은 아니어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우리 관계의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찾았고, 잘 해내고 있다. 


다만, "음식 간이 너무 세다"라고 한 마디 했다가 서운하다며 대차게 삐져버려 가끔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이 맛없다고 손도 안 대던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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