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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May 11. 2024

오래 우려야 진하다, 너도 그렇다

도가니 말고 스지탕

밥 먹을 때 국물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가끔씩 곰국처럼 뽀얗고 진한 국물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집에서 곰국을 하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니, 가끔 정육점에서 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곰국물을 사 먹곤 했었다. 


이마저도 지금 사는 동네에는 팔지 않아서 일부러 곰국물을 사러 헤매야 할 판이었다. 예전에는 정육점에서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보란 듯이 곰국물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곳이 잘 안 보인다. 

아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점점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하도 "곰국~" 노래를 부르니까 집에서 하기 힘들다며 한사코 외면하던 용주부가 큰맘 먹고 모험을 강행했다. 


용주부: '스지탕' 먹을래?
나: 스지? 스지가 뭐야?
용주부: 스지는 힘줄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도가니탕이랑 비슷해.
나: 도가니? 오! 좋아 좋아! 먹을래!

용주부가 한동안 너튜브로 열심히 찾아보더니 그게 스지탕이었나 보다. 스지탕이 뭔지도 모르는 나는 일단 국물을 해 준다는 말에 신이 났다. 


나: 오늘 먹을 수 있는 거야?
용주부:... 이거 삶는 데만 세 시간 걸려.
나: 뭐?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걸 왜 해?
용주부: 전기밥솥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대.
나: 그럼 빨리 먹을 수 있는 거야?
용주부: 그래도 한 3시간? 

아... 어쩔 수 없다. 뼈국물은 오래 우려야 진하니까 그 정도 시간은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전기밥솥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 있다니까 전날 저녁에 뼈를 담가놓으면 다음날 저녁에는 먹을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잠에 들었다. 


용주부는 근처 정육점에서 스지를 사러 갔다. 정육점 주인아저씨가 "스지는 오래 끓여야 할 텐데?"라고 하며, 내가 아닌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이 봐도 내가 할 것 같지 않아 보였나. 

정육점에서 나는 멀뚱히 다른 고기 구경하며 서 있고, 남편이 이것저것 주문하니까 뭣 좀 아는 사람이라 판단했나 보다. 정육점에서도 사람을 가리는 게 이상하게 내가 혼자 가면 같은 부위라도 남편이랑 갔을 때보다 비계가 더 많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용주부가 드디어 난생처음으로 스지를 사서 스지탕에 도전했다. 문제는 우리 집 전기밥솥이 6인용이라 스지를 넣고 삶긴 했는데 김이 빠지면서 안에서 국물이 흘러넘쳤다. 


용주부가 "어! 어?" 하는 사이 그 아까운 국물이 절반 넘게 흘러넘쳐서 결국엔 국물이 모자라서 시판용 곰국물에 스지를 넣어 먹은 슬픈 사연이 생겼다. 그래도 첫 번째 집에서 하는 스지탕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스지가 힘줄 부위라서 적당히 쫄깃하니 씹는 맛이 있었다. 한 번 시행착오를 겪어본 용주부는 들통을 공수해 온 뒤로 본격적으로 스지탕 만들기에 돌입했다. 스지탕은 아무리 조리법을 간소화해도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다. 용주부의 깐깐한 성미가 스지에 붙은 불순물이나 비계를 일일이 손으로 하나하나 잘라서 손질까지 하니 거의 하루 종일 스지에 매달렸다. 


1차로 삶아낸 스지와 손질을 끝낸 상태. 

철없는 나는 용주부의 한 땀 한 땀 손질의 노고는 알지도 못한 채 먹을 고기가 이만큼이나 있다는 것에 좋아서 (말 그대로) 춤을 췄다. 


용주부: 좋냐?
나: 응! 엄청 좋아! 보기만 해도 든든해!
용주부: 그럼 안 먹어도 되겠네?
나: 무슨 소리!

이렇게 손질을 마친 고기와 함께 다시 2차 삶기에 돌입했다. 사실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른다. 용주부가 하루종일 부엌에서 스지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다. 


잘 쓰려고 할수록 어깨에 억지로 힘이 잔뜩 들어간 어색한 글만 나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가' 자책했었다. 자책은 가장 손쉬운 회피였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해보고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출판사에 거절의 메일을 받을 때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정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소위 잘 나가는 상위 1% 작가만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가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식욕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그렇다고 굶지는 않았다), "먹고 싶은 거 없냐?"는 용주부의 말에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 대는 나를 보고, 기운도 북돋을 겸 시험 삼아 전기밥솥에 했던 스지탕을 잘 먹던 게 생각났는지 휴일을 통째로 반납하고 '스지탕'을 끓였다. 


흡사 한석봉 어머니 버전처럼 "너는 글을 써라. 나는 스지탕을 끓이마"를 연출하며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냈더랬다. 전기밥솥이 아니라 정석대로 들통에서 몇 시간 끓여낸 스지탕은 정말 진했다. 스지탕을 전문으로 파는 곳은 잘 없는 걸로 아는데 이 정도로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아마 '용주부네 식탁'뿐이지 않을까. 


뽀얗게 우려낸 스지탕

보기엔 기름기가 둥둥 떠 보이는데 일차로 기름과 불순물을 다 걸러냈기 때문에 하나도 기름지지 않았다.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게 마늘과 통후추, 약재? 등을 넣어서 곰국보다 진한 맛이 났다. 


나: 음~ 역시 스지는 정석대로 끓여야 하는 군.
용주부: 전에 밥솥이랑 달라?
나: 다르지! 그땐 흘러넘친 게 절반이었잖아?
용주부: 그렇지. 지금은 거의 스지 원액이라고 볼 수 있지. 
나: 아으~! 역시 사람은 속에 기름기가 차 있어야 돼. 든든하구먼! 
용주부: 노인네냐?
나: 너도 나이 들어봐.(n살 연상녀)

용주부표 스지탕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고, 고기는 거의 2인분이나 먹었다. 그래도 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먹는 내내 행복했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원고도 든든하게 채워볼까. 


왠지 모를 힘이 났다. '잘' 쓰는 건 모르겠지만, 끝까지 쓸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끝까지 썼고, 다시 도전했고, 계약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작가라는 출발선에 제대로 서게 되었다. 


상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이미 자리 잡은 작가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 작가가 그렇게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인내와 노력의 과정은 보이지 않으니 지금의 결과만 보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신세한탄을 했더랬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무명 시절이 무려 1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안되면 떡볶이 장사나 하려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는데 그 마지막 작품이 대박이 났다. 그 뒤로 지금까지 물론 승승장구하고 있다. 결과는 좋지만 여전히 하루 종일 글쓰기만 하고, 글쓰기만 생각하며 산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작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작가처럼 10년만 무명 시절을 견디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위안을 삼았던 건 '나는 지금 더 진하게 우려내는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 쓰고 싶은 글이 많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기에는 그 작가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 용주부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용주부: 그럼, 한 9년 7개월 남은 거야?
나: 뭐? 아...(계약한 기간부터 쳤나 보다. 치밀한 놈).

아직 우러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성급해진다. 글쓰기는 요행이 없다. 글도 대충 건너뛰면 완성도가 떨어진다. 첫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한발 한발 내딛기를 하는 중이다. 


힘들 땐 용주부의 스지탕을 먹으며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직 9년 7개월 남았으니까 그때까지는 스지탕을 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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