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국수
시작하는 용기보다 관두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까지 몇 년을 고민했다.
글이야 그냥 쓰면 되지 뭘 몇 년씩이나 고민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취미 이상의 글쓰기는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도 일 년 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전에 타과 타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한 달여 만에 관둔 전적이 있기 때문에 더 신중했다.
시작하지 않은 후회가 더 클 거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할 때가 가장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충 경력과 거리, 포지션 정도만 맞으면 지원했고(연봉은 나중 일이고), 회사에서도 적당히 맞겠다 싶으면 합격시켜 줬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이직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기에 관두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아예 직장에 다니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 어려웠을 뿐.
인간관계라고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더 좁아진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면 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릴 때는 "너도 이거 좋아해? 그럼 나랑 친구 할래?", "우리 둘 다 동갑이네? 친하게 진해자." 따위의 말만으로도 친구가 가능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데 이젠 누가 먼저 "친하게 지내요."라고 하면 경계부터 한다.
남녀 관계는 뭐... 더 말할 것도 없지.
시작하는 용기는 마음만 먹으면 된다. 기대도 된다. 뭔가 새로운 도전이니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설렌다.
그러나
관두는 용기는 자책감이 든다.
내가 끈기가 부족해서 그러나?
좀 더 노력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
.
나만 참으면, 이 고비만 넘기면...
되지도 않는 희망고문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대체 뭘 위해?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그 일을 위해 존재하는 나가 되어 버렸다.
대학원을 관두게 되면, 나는 이제 뭐지?
직장도 없는데 그럼 정말 소속이 없는 인간이 되는 건가?
세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
오롯이 '나'로만 서는 경험을 의무 교육을 시작하는 나이가 된 후로 거의 처음해 본다.
모든 시그널은 관두는 쪽을 가리키는데 미련인지, 뭔지 자꾸 선택을 미룬다.
곁에 있던 용주부도 괴롭기는 매한가지.
결정장애에 걸려 입 맛이 없다는 핑계로 또 우울해하자 그 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한다.
오늘 메뉴는 어남선생의 '설마 고추장국수'.
이름이 왜 이런지는 모른다. 어남선생이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면요리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와 더운 날 먹기 만만한 오이를 곁들인 비빔국수 레시피다.
나: 이야, 오랜만에 비주얼이 그럴듯한데?
용주부: (무심한 척) 그래?
나: 이거 아까워서 못 비비겠어.
용주부: 사진 다 찍었으면 양푼이에 다 때려 넣고 비벼.
위생장갑을 낀 용주부가 양푼이에 야무지게 비벼 낸 비빔국수.
오이를 절여 꼬들한 식감이 국수와 잘 어울린다.
맵찔이인 나의 입맛에 딱 맞는 너무 맵지도 달지도 않는 비빔소스에 면이 후루룩 끝도 없이 들어간다.
입맛 없다더니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나 보다.
관두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관두는 결정을 하기까지 고민이 길었을 뿐, 실행은 순식간이다.
교수 면담을 앞둔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 일이 있거나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불면증이 더 심해진다.
그날 교수나 나나 서로 덤덤한(후련한) 면담을 마치고, 그날 밤 꿀잠 잤다.
어쭙잖은 박사 학위라도 있어야 내가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이걸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다.
관둔다고 해서 지금까지 한 게 다 헛짓거리가 되는 건 아니다.
분명 나는 그전보다 성장했고, 많은 걸 이루었다.
그럼, 조금만 더 참고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도돌이표 질문을 계속하고 있을 때, 보다 못한 용주부가 한 마디 한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너 그 공부가 계속하고 싶어? 공부가 좋아?
아니.
1초도 안 돼서 바로 답이 나온다.
예전보다 더 책을 안 읽고, 예전보다 더 공부를 안 한다.
리포트를 내야 하니까 억지로 공부를 하고, 할 수 없이 수업을 듣는다.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혹은 관둬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이래서 저래서 온갖 이유를 다 빼고,
그래서 너는 그걸 하고 싶어?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나'가 있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모자란 나, 결핍된 상태의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벌거벗고 길 한 복판에 선 것처럼 부끄럽고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예전보단 조금 더 단단해진 건지,
아님 용주부표 고추장국수를 먹고 공복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로서만 존재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하는 멀티형 인간이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 딱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직장도 관두었고, 대학원도 관두었고, 예전 인간관계도 관두었다.
하지만 내 일을 관두지 않았고, 공부도 관두지 않았고, 인간 관계도 즐긴다.
다만 좀 더 심플해졌을 뿐이다.
관두고 나니까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단순하고 홀가분한 적이 있나 싶다.
아마 난 이래놓고 또 흔들리긴 할 거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는다.
앞으로 나는 '지금' 행복해지는 것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