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에 목마른 그대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아마 그날은 중간고사 이틀째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은 나중에 나는데 울음소리부터 시작했더랬지.
깜짝 놀란 엄마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고 "왜 우냐?"라고 물어봤다.
"오늘(끅끅) 시험 백점 못 받았어. 3개나 틀렸어!(엉엉)"
"......"
엄마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혼자 시험 잘 치겠다고 약속하고, 첫날에는 잘 쳤는데 둘째 날 시험을 망쳐서 울면서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이상하리만치 학교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본인들이 밀어줄 형편도 안되거니와 딱 봐도 그리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별 기대를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 공부에 별로 강압적이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칭찬에도 인색한 부모님이었다. 어릴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잘하면 칭찬을 해주실 거라고 기대했다.
서울에 와서 내 발로 찾아간 철학 수업에서도 칭찬받는 게 좋았다.
철학 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내면 일대일 첨삭을 해주셨는데 지적을 받으면 움츠러들었다.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아직은 부족하다"라고 했을 때 철학 선생님의 대답이 잊히지가 않는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굳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냥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논문을 쓰면서 지도교수님께 일대일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다지 혹평을 하지는 않지만 딱히 격려도 하지 않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나이스한 교수님이라 "잘하고 있다"는 말도 의심스러웠다.
"잘하고 있다고? 지금 수준에서는 잘하고 있다는 말인가?"
"결과는 어차피 내 책임이니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저렇게 말하는 건가?"
편집증에 가까운 의심을 하면서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해서 교수님한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다들 나보다 경력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실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런 초조함이 매 순간 나를 채찍질했고, 좋은 면보다 나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글 쓰는 환경이 나름 익숙하다고 자부했지만, 논문은 생전 처음 쓰는 작업이라 매 순간 자신의 한계에 부딪쳤다. 이렇게 긴 호흡의 작업은 처음이라서 매일 수행하는 기분이었다.
어찌어찌 초고를 완성하고, 그 뒤로는 개미지옥보다 무서운 수정 지옥...
수정을 하면서 다시 머릿속이 뒤죽박죽 됐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진즉에 버렸다.
이제는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현실은 아직 심사 중;;;)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지난한 작업 과정에서 잘하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쑥 들어갔다는 거다.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나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완벽'이라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논문 같은 건 외부의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평가가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다.
긴 호흡의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했음을, 타인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적어도 나 자신에게 인정받으면 일단은 그걸로 족하다.
"(선생님에게) 잘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니까 더 안 된다.
누가 그랬다. 잘하는 건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잘한다의 기준, 평가는 남이 하는 거다. 그건 내 손을 떠난 뒤의 일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신경 쓰니 압박감에 더 망치게 된다.
인정받고 싶다는 압박감이 시작을 망설이게 한다. 망설이다가, 조금 해 보다가 반응이 별로면 금세 관두고 만다. 내 인생에 별로 중요치 않은 타인의 인정만 바라다가 정작 제일 중요한 나 자신의 인정은 뒤로 한 채.
난 완벽주의라서 그래.
이런 변명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꾸준히 하는 것,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생긴 건 지난날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수없이 많은 시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지금 이 순간뿐이기에,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