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다니고 있는 요가 워크샵의 이름은 "버티는 몸"이다. 뭘 버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 이름에 끌려서 패기 있게 등록을 했고, 그로부터 주2회씩 고난과 평화의 콜라보를 경험하는 중이다.
아직 불가능한 동작들도 많은데, 그 때마다 선생님은 동작이 완성되지 않더라도 노력해보라고 했다. 노력하고 있는 동안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감각하라고 했다. 분명 하지 않을 때와는 다른 무엇이 있을 거라고. 실제로 그랬다. 어깨 서기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세우려고 할 때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과 떨림, 몸 전체를 흐르는 긴장감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얼마 전 요가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노력할 때의 감각을 느껴 보라'는 말을 되새기다가, 문득 제주에서 걷던 날을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제주에 혼자 있을 때였다. 문 밖에 제주가 있는데도, 어떤 날은 그냥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책과 영화만 보고 싶었다. 너무 내부로 침잠할까봐 걱정되어서, 매일 1시간씩은 산책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유난히 나가고 싶지 않았던 어떤 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겨우 집을 나섰다. 얼마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강풍이 불었다. 처음엔 등 뒤로 부는 바람 덕에 걷기가 편했는데, 오는 길에는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태풍 빼고 제주에서 느껴 본 가장 강한 바람이었다. 한 발자국을 떼는 데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고, 조금 걷다가 잠시 멈추고 버텨야 했다. 겨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봤을 때, 얼굴과 머리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켜서 기뻤다.
그러면서, 남들과 조금 다른 패턴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어쩌면 그렇게 바람이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사실 열심히 버티고 있는 걸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기억하건대, 워낙 불안하고 힘든 때였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버티고, 조금씩 쉬어가며,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보니 오늘이 왔다. 아직도 그 날 바람의 세기와 걷기 위해 움직이던 몸을 기억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일상을 재건하던 감각을 기억한다.
계절도 조금씩 변한다. 계절 중에서도 겨울에서 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가장 극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봄도 어느 한 순간에 전부 오지 않는다. 조금씩 쌓이다가 어느 날 완연한 봄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렇게 봄이 물씬 느껴지는 날도 좋지만, 봄으로 가는 변화를 하나씩 바라보고, 그 변화의 레이어가 쌓여 두터워지는 계절감을 느끼는 것도 좋다. 사소한 변화들이 쌓인 과정을 다 알고 있을 때, 완연한 봄날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요즈음은 그렇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변화하는 감각을 느껴보는 중이다. 버티는 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 몸에 힘을 주고 순간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나의 구석구석 안부를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다. 아직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혹은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과정의 감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일도 그렇다. 방향이 다른 일을 시도해본다는 것, 내 경우엔 방향이나 장르가 다른 글을 써보는 것인데, 분명 쉬운 일이 아니라 도중에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가 동작의 완성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해보는 감각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분명 느껴지는 것들과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실망이나 좌절을 몇 번씩 맛보더라도, 결국 어떤 날에는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갑자기 느껴지지 않을까. 성큼 봄이 오고, 불쑥 좋은 날들이 도착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