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순간

낭만주의의 마음

by 김지연

며칠 전 엄마와 집 근처 공원을 걸었을 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순만 돋았던 조팝나무에 흰 꽃이 피기 시작한 걸 보며, 이맘때 가장 사랑스런 꽃 중 하나인데 이름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는 이야길 했다.


사실 조팝나무의 영문 이름은 'Bridal wreath', '신부의 화관'이라는, 생김새와 어울리는 예쁜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밥알을 닮았다며 조팝나무다. 그러고 보면 이팝나무도 '프린지 트리'(Retusa fringetree)라는 어울리는 이름이 있는데, 이것도 밥알을 닮아서 이팝나무.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하며 역시 한국인은 기승전 '밥'이라고 웃었다.


그렇게 걷다가 나는 엄마에게, 어쩐지 이번 봄은 이육사의 '광야'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혹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생각난다고. 그런데 이육사에 조금 더 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일상은 빼앗긴 들에서 거니는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곳에서, 백마 타고 멀리서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마음. '청포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두고 기다리는 그런 마음이라고.


엄마는 퇴폐적 낭만주의인 이상화의 시보다 낭만주의인 이육사의 시에 의지가 더 묻어나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했다. 아무래도, 낭만주의의 의지가 있어야 버틸 수 있는 봄인가보다. 물론 여기까지 들은 친구는 엄마와 이런 대화는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엄마와는 오늘 저녁 메뉴 얘기하는 게 정상 아니냐며.


해마다 봄이면 미세먼지에 민감했는데, 마스크가 일상인 이번 봄에는 마스크 벗고 들이마시는 공기가 전부 맑은 공기로 느껴질 정도라 계절의 감각이 영 둔했다. 하지만 며칠 전 집에 오는 길에 잠시 마스크를 벗었더니 매화 향기가 훅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매화향 섞인 저녁 공기와 함께, 봄이라는 단어의 획 사이마다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몸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봄날의 찬란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시절이 어두워도 봄은 봄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산책하던 와중에 성질 급한 벚나무 한 그루가 만개한 걸 봤다. 초록색 순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고 바람이 어느새 따스해지고, 이렇게 변화하는 국면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벅차다. 그래서 얼어붙었다가 다시 깨어나 분주해지는 봄을, 늘 사랑했다.


이번 봄은 유독 눈부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애틋하고 그립다. 세계가 얼어붙어 있어도, 우리가 주저앉아 있어도, 어떤 순간에도 자연의 봄은 이렇게 담담히 온다. 속절없이 예쁜 날씨가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올 것은 온다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새순과 같은 희망이 돋아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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