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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r 11. 2021

그리움의 정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

오랜만에 파리스 매치를 듣다가 인디고, 달리아, 디사운드, 스완다이브가 차례로 소환되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마다 그걸 듣던 계절의 그리운 공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예전에 누가 그랬다. 네 글에는 어디에나 그리움의 정서가 묻어 있는데 빠르고 단호한 문장으로 다 감출 수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실제로 매 순간 뭔가 그립다. 같은 순간은 절대 오지 않기에 빛나는 순간엔 늘 가슴이 간질거리면서 먹먹하다. 매 분 매 초마다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가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지금 여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벌써부터 지금에 대한 애틋함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과도하게 자격을 부여하고 마음을 쏟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것은 의미를 가지니까 어쩌면 과도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다. 다만 뭐든 너무 오래 붙잡아두면 의미도 애틋함도 바랜다. 흘려보내고 돌아볼 때 더 빛나는 것들이 있다. 남는 건 마음이다. 그걸 식히고 가라앉히고 증발시켜 자리를 정돈하는 것은 내 몫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시절이든 내 몫의 남은 마음을 많이 가져왔던 나는 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정 후엔 번복하거나 돌아보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남은 것은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마음이 있었다.

여름의 소설 수업에서 선생님은 감정과 정서는 다르다 하셨다. 순간에 느끼는 것은 감정, 지난 뒤에 앙금이나 흔적처럼 남는 것, 시간이 지나도 휘저으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정서다. 그걸 잘 표현하는 게 작가라고, 감정만 가지곤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얘기였다.

내가 추적하다 못해 붙잡고 늘어져 종이 위에 주저앉히고 싶은 것도 사실 순간보다 정서다. 당시의 공기는 어땠고 마음은 얼마큼 반짝 빛났는지, 왜 페이지를 넘겨야 했는지, 뭐 그런 것들. 그렇게 곱씹으면 순간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하나의 순간에 굉장히 풍성한 기억이 가지를 친다. 그리고 껌에 단물이 빠지듯 아무 맛도 남지 않아 그리움도 산뜻하게 보내는 성장의 날이 문득 온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코이치는 여름날의 모험을 통해 부모님의 이혼과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토록 싫어하던 사쿠라지마의 화산재를 아무렇지 않게 닦는 아이의 손길에서 산뜻한 성장의 감각을 느낀다. 반면 어른은 어리석고 질척댄다.


<와일드>의 셰릴은 고통을 소화하지 못해 삶을 망가뜨린 뒤에야 겨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아이들보다 느리지만, 셰릴도 마침내 과거와 결별하며 웃는다. 떠나보내는 건 쉽지 않지만, 보내 주어야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작년 한 해는 삶을 재건하고 이어 낸, 기억될 해였다. 애써 붙잡느라 뚝 끊긴 철로 위에 정체되어 있던 삶이, 2015년과 2019년까지의 나를 완전히 떠나보내자 비로소 온전한 하나로 이어졌다. 삶은 계속 변화하지만, 시절 별로 분절되고 문이 닫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애쓰면 되려 삶의 어떤 부분이 찢어진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보내는 것이 망가진 삶을 온전하게 수선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한참을 애쓰고 막다른 길까지 도착해서야 알았다.

겨울이면 듣는 Sia의 <Snowman> 에는 제때 북극으로 가지 못해 녹아 버릴 위기에 처한 스노우맨이 등장한다. 여기 함께 있고 싶지만 녹아 버리면 안아줄 수 없다. 고정되길 바라는 순간들이 있지만 모든 것은 미래로 향하며 변한다. 애틋해도 상황에 따라 보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넘겨버린 삶의 페이지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찢어지기 전에 넘겨야 한다.


다음 장으로 넘겼을 때 다시 오는 좋은 것들이 있다. 그건 페이지를 넘겨야 알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그리운 정서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내 몫의 마음이다. 사실, 그런 마음을 누리며 뭔가 생각하고 쓰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

비현실적인 작년을 지나왔지만, 또 유난히 애틋하다. 목성과 토성이 만난다는 대우주쇼를 서울 하늘에서 못 본 건 딱히 아쉽지 않지만, 올해 미처 만나지 못한 얼굴들과 마스크 뒤의 웃는 입꼬리들은 아쉬운 연말이었다. 그래서 말과 손이 닿는 곳에는 괜히 마음을 전해 본다. 이런 날들도 언젠간 산뜻하게 웃으며 얘기할 그리운 순간이 되길 바라며.


그리워했던 것, 그리운 것, 곧 그리워질 것들이 하나씩 떠올라 빛나며 가슴 안의 우주를 채운다. 그리워하는 건 내 몫이라지만, 가능하다면 그 몫을 한 조각 떼어서 당신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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