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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 이제 예배드리자.

by 박수소리

똑똑똑...


"일어났어? 이제 예배드리자."


어스푸레한 새벽녘, 창문 틈으로 스며든 산자락의 맑은 공기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황토방 옆 거실로 나가니, 목사님이 찬송가 반주기를 켜고 조용히 아침 성가를 준비하고 계셨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종로의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리산 산골 마당에 발을 딛고 있으니, 이 모든 게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암 선고를 받고 대형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던 날, 나는 나의 모든 활동을 멈추기 위해 하나둘씩 전화를 돌렸다. 직장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나의 사정을 알려야 했다. 대부분은 채식 비건 운동을 함께하던 이들이었다.


방사선 검사, 피 검사, 소변 검사… 계속되는 검사 사이 틈을 타, 병원 복도에 서서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에요. 당분간 활동 못 할 것 같아요. 아니, 앞으로도… 저, 암이래요.”

수화기 너머로 말이 없었다. 묵묵한 침묵이 흘렀다.



2011년, 나는 비건을 선언한 뒤로 동물 보호, 자연, 기후 위기 등 삶의 여러 관심사를 그곳에 걸었다.

M&A를 거듭하며 덩치를 키우는 대기업에 다니며, 막 인수된 법인의 시스템 교육을 담당하던 나. 기업의 속성과 내 삶의 방향은 늘 어딘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 회사는 술자리 구호에 항상 'win'을 붙이는 문화가 있었다. win이 이기는 것, 쟁취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구호에 동의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만난 비거니즘은 마치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수직적인 회사 조직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와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됐다.


전혀 다른 두 세계 속에서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비거니즘은 사회적 소수자인데다 물질지향적이지 않다보니 가난했고, 회사는 돈을 잘버는 대신 공격적이었다.

돈도 벌고 싶으면서, 평화도 얘기하고 싶어하는 어중이 떠중이인 나는 둘 다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 방법으로 회사에서 버는 돈의 일부를 가치관과 맞는 정치정당과 시민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금전적 후원을 하던 나는 어느새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벗어나오고 싶은 만큼, 비건을 신봉했다. 비건은 분명 종교가 아니지만, 회사에서 공격적인 일에 동참해야 할 때면 나는 비건에 기대어 평화를 찾았다.


자연치유, 비건식, 명상으로 살아온 지난 날

그리고 지금, 나는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며, 또 한 번 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꼈다.


“음… 전 이제 어쩌죠?”
“내일 시간 돼요? 경남 산청에 제가 아는 목사님 댁이 있어요. 거기 잠깐 가 있는 거 어때요? 검사 결과 나오려면 어차피 일주일 걸린다면서요. 그동안 그냥 머리 좀 식히고 와요.”

시민단체의 지인이 나에게 경남 산청에 갈 것을 제안했다.



다음 날 나는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조용히 캐리어를 쌌다.
며칠만 잠깐 머물 예정이었기에 옷도 몇 벌 챙기지 않았다.

“이거 가져가.”
엄마는 냉담자인 나에게 묵주와 묵주기도책을 굳이 캐리어 앞주머니에 넣어주셨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캐리어는 지인의 차에 실렸고, 그렇게 나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의 한 시골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를 산청 지리산 둘레길 어느 허름한 집에 내려다준 지인은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 이곳에는 아는 사람 없이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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