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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통, 털보 영감님과 나의 암 선고

by 박수소리


18개월간의 모유수유가 끝났다. 아기는 분유와 젖을 섞어가며 건강하게 자라났고, 나는 직장에 복직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나는 사무실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처음 복직했을 때는 젖이 땡땡하게 불어 고생했지만, 단유를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가슴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4개월쯤 지난 어느 날, 샤워를 하다 오른쪽 가슴 아래쪽이 단단하게 만져졌다. 아무래도 남은 젖이 덜 빠진 듯했다.


토요일, 단유 전문 유방마사지사를 찾았다. 방은 은은하게 어둡고, 가습기에서는 촉촉한 수분이 흘러나왔고, 아로마 향이 잔잔히 공간을 맴돌았다. 마사지 선생님은 1년 전, 젖이 부족했을 때 만났던 그분이었다. 내 유방을 조심스레 만지던 선생님은 노란 젖을 짜내며 잠시 한숨을 쉬었다.

“흐음… 엄마, 근처에 유외과 있어요. 아무래도 이건 좀… 심상치 않아요. 꼭 가보세요.”

그 나직한 한숨에서 베테랑의 직감이 느껴졌다.

마사지가 끝나고 터덜터덜 걸어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남편이 그네로 장난을 치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보, 마사지사 선생님 말로는 심상치 않대.”
“뭐 별일 있겠어. 혹시라도 양성종양이면 다행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
“아냐… 느낌이 이상해. 만약 암이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장아장 아기가 그네를 밀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걱정을 뒤로 하고 일단 오늘의 삶은 이어져야 헀다.



2주 후 점심시간, 동료와 산책을 하던 중 동네 유외과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보호자와 함께 오실 수 있으세요?”
나는 그 말만으로도 알아차렸다.
“그렇게 되었군요.”


그날 밤, 친정 식구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아기는 자신을 보러 온 줄 알고 ‘통통통통, 털보 영감님’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퇴근 후 병원을 다녀왔고, 친정집 식구들은 아이를 돌보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의 말이 날아들었다.

“그때 네 안색이 안 좋았을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아픈 건 나인데, 엄마는 왜 원망 섞인 걱정을 먼저 던지는 걸까. 묘하게 당황스러웠다. 온 가족이 눈을 맞추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주인공인 무대 같았다. 말 한 마디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기가 다시 통통통통 영감님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웃기고,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해주는 게 고마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멍하니 아이를 보는데, 수많은 To-Do 리스트가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회사에 이야기 하고, 보험사 청구를 하고, 어린이집과 동네 이웃들에게 이야기하고, 남편도 남편 회사에 말하고, 회사에서 하던 프로젝트는 인수인계해야 하고, 활동하던 시민단체에도 얘기해야 하고...멍한 나의 모습에 가족들도 말을 잃었다. 고요한 그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

밤이 되어 모두를 돌려보내고, 샤워를 했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용기 내어 가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한쪽이 어그러져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얼마나 놓고 살았던 걸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수첩을 꺼내 하나씩 해야 할 일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을 꼼꼼히, 매일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2주 뒤, 나는 상급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환자분, 들어오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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