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활 없이 부모와 쭉 살다가 결혼한 나는, 나의 출가로 갑자기 동거인을 잃어버린 부모님이 측은했다. 한 달에 2번 정도, 아빠가 좋아하시는 슈크림빵을 사들고 신랑과 친정에 갔다. 밥을 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용돈을 드릴 것도 아니면서,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것만으로 자식 할 도리를 다 했다 생각했다.
슈크림빵(출처 : 빠리바게트)
친정만 오면 어색해하는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볼 참이면 아빠가 나를 자꾸 주방으로 불렀다. 결혼 전에는 "밥 먹어라" 소리 나올 때까지 방에 누워있었는데, 결혼 후 친정에 찾아가니 아빠는 나를 주방의 인턴인양 마구 부려먹기 시작했다. 콩나물대가리를 선별해라, 양파를 까라, 도마를 닦아라, 당근을 채 썰어라, 버섯을 약한 불에 볶아라 시키고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관찰하며 평가했다. 결혼 후 신부수업을 시켜야겠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배달음식과 밀키트, 외식의 시대에, 맞벌이인 우리가 얼마나 밥을 해 먹는다고 이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키나. 더구나 남녀평등의 시대에, 저기 소파에서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좌불안석으로 TV와 주방을 번갈아서 보는 남편은 안 부려 먹고, 도대체 소중한 딸한테만 왜 그러실까. 직장에서도 안 들어본 잔소리를 친정에서 듣자니 귀가 아팠지만, 잔소리하는 아빠를 보니 왠지 신나 보여 묵묵히 아빠의 장단에 맞춰드렸다.
아빠의 훈련과정 중 가장 잔소리가 심해지는 건 바로 압력솥에 밥을 할 때였다. 멥쌀과 찹쌀, 잡곡의 비율을 얼마큼 부을지, 쌀을 씻을 때 몇 번을 헹굴지, 물을 얼마큼 넣을지, 잡곡이 있을 때는 물을 얼마큼 더 넣어야 할지, 불을 어떻게 조절할지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1주일에 1번 해 먹을까 말까 하는 나에게, 압력솥으로 밥 하는 과정은 도무지 필요가 없는 TMI였다.
유명한 전기밥솥 광고 갈무리
당시 나의 신혼집에는 연예인들이 TV에서 홍보하는, 과학적인 원리로 촉촉한 밥을 만들어준다는 최신형 전기밥솥이 있었다. 마치 컵라면에 물을 붓듯, 밥솥에 표시된 쌀과 물의 적정선을 맞추어 넣고, 잡곡인지 쌀밥인지 선택만 하면, 1시간 후 아름다운 밥이 짜잔 하고 완성되는 전기밥솥.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외국인들의 단골 수하물이 전기밥솥일 정도로, 전 세계가 한국 전기밥솥을 극찬하는 판국에, 아빠는 여전히 10년 된 압력솥으로 밥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압력솥 사용법을 딸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고 결심한 듯했다. 휴일이면 회사업무도 탈탈 털어버리고, TV앞에서 생각 없이 허허허 거리고 싶은 나는 압력솥에까지 나의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았다.
한국 전기밥솥은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당신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 있는 딸이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자, 압력솥의 추가 지금 흔들리기 시작하지. 그럼 불을 얼마큼 낮춰야 한다고?"
"불을 낮추고 나서, 몇 분 후에 불을 꺼야 한다고 했지?"
"불을 끄고 나서, 압력이 빠진걸 어떻게 안다고 했지?"
아빠, 전기밥솥의 시대예요. 불도, 물도, 추도, 시간도 신경 안 써도 된다고요. 전기밥솥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음성이 나오면 밥이 다 된 거라고요. 압력솥으로 밥 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요. 나는 속으로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수많은 근거들을 생각해 냈지만, 아빠는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내가 친정에 올 때마다 반복학습을 시켰다.
잔소리를 들은 지 5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나는 아기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아름다운 취사 노래가 나오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 먹고 있었다. 어느 날 아빠는 아기 엄마가 되어서도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는 딸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커다란 압력솥을 사서 가지고 오셨다. 가뜩이나 주방 수납공간도 없고, 전기밥솥도 잘 쓰고 있는데, 저 커다란 압력솥이라니...
압력솥
"하... 아빠, 우리는 압력솥 안 써요. 가뜩이나 좁은 집 주방에 놓을 때도 없는데..."
아기를 낳고 육아로 지쳐있던 나는, 선물에 대한 감사함도 잊은 채 솔직하게 압력솥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에게 부모님은 놀라지도 않는 눈치였다.
"그래. 너희 안 쓰면 나중에 우리가 가져갈게."
압력솥은 선물로 우리 집에 당도하자마자 베란다 창고에 처박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압력솥에 눈을 번뜩 뜨게 되었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아니, 도대체 이 좋은걸 내가 왜 그렇게 무시했을까? 글을 모르면 문맹, 압력솥을 모르면 압력솥맹. 압력솥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지인의 송년회를 도우러 갔을 때였다. 송년회가 어떻게 홍보가 되었는지, 손님이 30명은 더 왔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져 가는데, 밥은 사전 예약된 인원분만 되어 있었다. 식사 시간에 앞서 손님들은 마이크를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약 10여분 후면 식사시간이 시작될 터였다. 주방은 바삐 움직였다. 나는 밥이 담긴 도자기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밥이 한참 모자랄 듯한데 어쩌죠?"
"밥은 지금 하면 되죠. 저기 사과나 좀 더 잘라주시겠어요?"
그곳은 건강과 식생활을 강의하는 문화센터로써, 100% 현미로만 밥을 하는 곳이었다. 후다닥 떡만 국물에 투여하면 되는 떡국도 아니고, 된장 풀어서 휘리릭 끓여내면 되는 된장국도 아니고, 현미밥을 무슨 수로 10분 만에 만든단 말인가. 더구나 불려놓은 현미도 없는 상황이었다. 걱정하는 나와 달리, 송년회 주최자의 얼굴은 무사태평했다. 10킬로짜리 쌀봉투를 번쩍 들더니 멥쌀과 찹쌀현미를 압력솥에 붓고서, 물로 휘리릭 헹군 뒤, 압력솥뚜껑을 닫고 인덕션에 올렸다.
"추추추추추~~ "
인덕션에 솥을 올린 지 7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주방의 압력솥 추에 집중되었다.
자기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압력솥의 김이 거의 빠져가고 있었고, 줄 서서 사람들이 접시에 자신의 밥을 담기 시작했을 때 밥은 이미 도자기그릇에 부어졌다. 윤기가 좌르르 도는 게, 즉석밥의 광고에서나 나올법한 비주얼이었다.
갓 지은 밥때문일까, 압력솥의 추소리에 홀렸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그날 송년회 3시간 동안 밥을 먹고 또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 된장나물무침과 김뿐이었는데, 사람들은 밥을 2번에서 3번씩 가져다 먹었다. 어떤 손님은 쌀이 어느 지역꺼냐고 물었고, 어떤 손님은 뜸을 얼마나 들였나고 물었다. 당뇨 때문에 잡곡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동안 스스로 한 밥이 딱딱하고 씹기 불편한 손님은 송년회가 끝날 무렵 도자기에 아주 조금 남은 밥을 긁어 지퍼백에 챙겨갔다. 그야말로 밥에 홀린 사람들 같았다.
압력솥은 송년회 동안 3번 더 밥을 해냈다.
"참 신기하죠? 압력솥으로 밥을 하고, 뜸을 잘 들였을 뿐인데, 사람들이 밥 하는 비결을 물어봐요. 지난번에는 요청이 있어서 압력솥으로 현미밥 짓기 강의도 했었어요."
밥이 거의 남지 않은 도자기그릇을 함께 정리하며 송년회 주최자가 말했다.
압력솥은 물과 쌀의 비율을 눈대중으로 조절해야 하고, 불도 조절해야 해서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지만, 효율성 측면이 끝내준다. 가뜩이나 빠른 압력솥이 인덕션과 만난 순간, 압력솥은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밥을 해내는데, 밥의 품질마저 월등하다. 뜸들이기도 알아서 해준다. 압력때문에 튀어나왔던 고무가 쏙 들어가면 다 된 것이다.
송년회의 강렬한 경험 이후에도 나는 압력솥으로 밥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번지점프대에서 뛸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처럼, 밥을 할까 말까 스스로의 신뢰가 없어 망설였다. 그러다 육아와 회사 때문에 시간에 쫓기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베란다 창고에 박혀있던 압력솥을 뜯어 세척을 한 후 10분 만에 현미밥을 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1번, 2번, 3번.... 좌르르 윤기가 도는 현미밥에 성공하다 보니, 유명브랜드의 최신형 밥솥이 반대로 베란다 창고에 박히게 된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1번만 20인분의 밥을 한다. 전자레인지겸용인 밥그릇에 소분해서 일부는 냉장, 일부는 냉동을 해놓고 일주일 내내 먹는다. 전자밥솥에서 보온기능으로 밥을 유지했을 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밥도 누렇게 말라가면서 늙어갔지만, 스스로 만든 냉장밥은 전자레인지에 30초에서 1분만 돌리면 갓 한 밥으로 다시 태어난다.
압력솥의 사랑은 해외여행 때도 계속되었다. 지난해 여름 나는 3개월간 중앙아시아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중앙아시아의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집에서 쓰던 인덕션에 비해 너무 떨어졌다. 200ml 물을 끓이는데도 인덕션에서는 불과 몇 초면 됐는데, 화력이 약한 가스레인지에서는 물이 뜨뜻미지근해지는데도 오래 걸렸다. 화력이 약한 중앙아시아에서 비교적 빠르게 3개월간 미역국도, 짜장소스도, 밥도 맛있게 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압력솥의 공이 크다. 화력이 약한 순간 압력솥은 제기능을 모두 발휘해서 요리를 맛있게 해냈다. 호스텔에 묵는 다른 게스트들이 나의 압력솥을 보면 매번 러시아어로 이 냄비가 뭐냐고 묻고는 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주 천천히 깨닫는 것들이 종종 있다. 어떤 것은 경험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자식을 낳고서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바로 부모는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압력솥을 잘 쓰게 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아빠의 주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압력솥이었다는 것을...
압력솥의 매력에 빠지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가끔 아빠의 마음이 된다.
압력솥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근마켓에 종종 압력솥을 부담스러워하며 물건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