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문학가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영화로 뮤지컬로 숱하게 제작되어 왔다. 지금 소개하려는 (안나 카레니나>는 1997년 버전의 소피 마르소와 숀빈 주연의 영화다. <불멸의 연인>에서 감독과 각본을 맡았던 '버나드 로즈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눈여겨볼 2012년 연기파 배우의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작품이 있긴 하지만 내 취향과 전체적인 흐름 구성면에서 미국 버나드 로즈 감독의 영화를 추전 하는 바이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작품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전인미답을 풀어가는 젊은 사람들이 읽으면 특히 좋은 책이다. 그들이 겪어나갈 사고의 혼돈, 인생의 질곡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과 행동이라는 걸 보여주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지혜를 어느 정도 갖춘 사람들에게도 좋다고 덧붙이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소설의 시작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행복한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는 문구는 많은 것을 떠
올리게 한다. 문학사상 최고의 첫구절로 꼽힌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동물들에게 쫓겨 떨어진 천 길 구덩이에서 아래는 다른 동물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꿈속에서 죽는 걸 알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사랑을 모른 채 죽는다는 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이런 공포를 느끼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 안나 카라니 나도 그랬으니까" 인간에게 그만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인공은 레빈과 키티 그리고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백작이다. 레빈은 대저택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는 본인이 나이가 많고 못생기고 친구로는 좋겠지만, 남편감으로는 별로라는 말을 친구에게 한다. 시골에서 대농장을 하고 있는 콘스탄틴(레빈)은 키티에게 마음이 있어 청혼을 하지만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거절하고 오히려 브론스키 백작에게 마음이 가 있다. 레빈에게 키티는 세상 시름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표현하는데 정작 키티(스티바(안나의 오빠)의 처제)는 아랑곳하지 않아 그도 약간은 마음을 접기도 한다.
안나와 알렉세이 사이는 결혼하여 8살짜리 남자아이가 있다. 안나는 젊고 예쁘고 감수성이 뛰어나고 자유를 갈구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알렉사이는 나이가 좀 많고 관료적 외교관으로 권위적이고 옥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대비가 된다. 또 다른 주인공 콘스탄틴(레빈)은 원칙적 이상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면서 농장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수수한 인물이다. 브론스키는 청년 장교이며 아직은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려고 하며 열정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안나를 사랑하게 된다.
안나가 급하게 기차를 타고 온 이유는 결혼한 오빠네를 오기 위해서다. 새언니가 가정을 돌보느라 정신없는 사이 친정 오빠가 바람을 피워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기차를 탔고 온 것이다. 스티바 친정오빠를 만나러 온 안나는 어머니를 모시러 온 브론스키 백작과 기차역에서 마주치게 된다. 더구나 브론스키 어머니와 안나는 이미 아는 사이였고 그래서 서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날 달리는 기차에 사람이 떨어져 죽는 사고를 목격하게 되는데 불길한 징조로죽음을 복선에 예견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만남은 후에 안나의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의 끈질긴 대시로 인해 자주 마주치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대저택 무도회에서둘이황홀하리 만큼 멋진 춤을 추게되면서부터다.
연주와 몇 백 명이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 이때 안네 카레니나는 브론스키와 춤을 추게 되고 그 모습은 훨훨 나는 나비의 모습처럼 가볍고 예뻤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만남을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라고 느끼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잠깐 바람을 쐬러 바깥으로 나오게 되는데 뒤따라온 브론스키와 만나게 되면서 서로 바짝 다가서게 된다.
이때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의 1악장 2 주제의 선율이 아련하고 감미롭게 깔린다. 그 뒤 브론스키는 안나를그림자처럼 뒤쫓으며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안나는 아들을 생각해서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브론스키의 끈질긴 애원에 넘어가고 만다. 두 사람은 결국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비밀은 없듯 사교계에 알려지게 되고 남편에게 알게 되면서 문제가 커지게 된다.
안나의 남편은 알렉세이(카레닌)는 성공한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음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안나는 평소에 워낙기계처럼 대하는 알렉세이 남편에게 인간미가 느낄 수 없어 행복하지 않다. 이런 남편과 사는 것이 안정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 탈출을 꿈꾸기도 하는데 아들이 있기 때문에 애써 자신을 묶어 두려고 한다. 이런 안나에게 브론스키의 적극적인 접근은 안나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결국열렬한 사랑으로 빠지게 만든다.
한편 키티는 브론스키가 안 나와 사랑에 빠진 것을 눈치를 채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면서 실망감을 느끼고 결혼에 대한 생각도 접어두게 된다. 후에 브론스키에 대한 애절함으로 병이나 요양하러 가는 키티의 모습을 레빈은 멀리서 보기만 한다.후에 키티의 건강이 회복되어 레빈과 만나게 된다. 이때 레빈은 키티에게 변함없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고 둘은 부부가 된다. 이 둘은 자신의 고향에 가서 태어난 아기와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삶을 살아간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갖게 되고 나중에 유산을 하게 된다. (원본에는 아기를 낳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안나는 날이 갈수록 정서가 불안해지고 브론스키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안나를 브론스키는 회피하게 되고 그의 어머니는 늦기 전에 아들에게 젊은 여자를 붙여 주려고 애쓴다. 혼자 남겨질 때 혹은 아들이 보고 싶을 때 안나는 모르핀을맞는다.
그러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브론스키와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갈수록 짜증과 집착이 늘어나던 안나는 불면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다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기차역으로 향하고 결국 안나는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한다. '신이여, 모든 걸 용서해 주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안나가 죽은 후에 브론스키는 오스만 터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터로 떠나게 되면서 레빈을 만난다.브론스키는 레빈에게 ' 첫 만남을 기억하고 싶으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을 건넨다.레빈은 브론스키가 너무나 안나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삶과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 모습으로~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여기서 두 부부의 모습은 대비되어 나타난다. 레빈은 사랑했던 키티와 결혼해서 모범적인 부부생활을 이여 나간다. 이사랑이 끝가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사랑뿐만 아니라 책임, 배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알렉세이와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아 더 이상 부러울 것 없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레빈과 키티는 가정을 이루어 소박하게 만족하며 살게 된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륜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런 불륜이 엄청나다고 생각하는데 1800년대 초반이야 어떠했겠는가? 파격적이고 대범한 불륜이다. 그런데 당시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나는 왜 남편이 아닌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안나는 제대로 삶을 즐기고 싶어 했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며 열정을 가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안정된 삶에서 누리는 편안한 삶보다는 가슴 뛰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독한 사랑 끝에는 파국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안나가 아들을 지키며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물론 그러면 소설로의 묘미는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 두 주인공 중에서 안나는 고통스럽게 싸웠고, 레빈은 진지하게 성찰했다. 방법과 목적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민낯으로 삶을 마주했다. 누가 뭐래도 각자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삶이었으므로 후회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