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공지영은 서울 출생으로 1988년 창작과 비평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했다. 대표작으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외 다수가 있다. 그녀는 예리한 통찰력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작가이다. 1977년 세례를 받은 공지영은 자신이 천주교인임을 늘 알려 왔다. 한 달간의 유럽 수도원 순례기를 담아 2001년 펴낸 '수도원 기행'(김영사)에서는 18년 만에 회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지영 작가의 천주교 세례명은 마리아다.
<수도원 기행 2> 프롤로그에서 공지영은 18년 만에 찾은 분당의 요한 성당에서 하느님의 강한 존재의식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로 다짐한다. 그녀는 당시 세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 폭력으로 입술은 부어있고 두꺼운 화장 아래로 시퍼런 멍자국이 시커머죽죽 있었다고 회상한다. 18년 동안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성경의 한이야기를 떠올렸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과 비슷한 자신의 처지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하며 온전히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다.
공지영은 한국 왜관 수도원 베네딕도 수도원을 비롯 세계 10개의 수도원을 방문하며 <수도원 기행 2>를 썼서 2014년에 출간했다. 작가는 몹시 고독해야 하고, 줄을 치는 거미처럼 이기적이어야 하며, 착륙하는 비행사처럼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줄의 글도 뽑혀 나오지 못한다고 작가의 고충을 토로한다.
공지영이 왜관 수도원을 처음 간 것은 <높고 푸른 사다리>를 집필하기 위해서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에 글감들이 모여 모티브에 저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재가 그랬고, <도가니>라는 소설의 제목이 그랬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수도원들이 꽤나 많다. 천주교에는 남자 수도사들이 있는 대표적인 왜관수도원이 있다.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뉴튼, 서울, 부산, 화순, 금남 그리고 독립한 요셉 수도원까지 여섯 개의 분원을 두고 있다. 왜관 베네딕도에는 70여 명의 수사님들이 사시는 규모가 큰 수도원이다. 한자의 음을 빌려 분도 芬道 수도원으로도 불린다.
왜관 수도원은 지원기 일 년, 청년기 일 년, 수련기 일 년을 거쳐 유년기 사 년을 마치고 종신서원을 하는데 7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평생 여기서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지 시험하는 것이다. 종신 서원에 이르러 그분들은 수도원 안에 평생토록 정주하며, 아빠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자신의 약함을 매 순간 고쳐 수도자답게 살아가겠다고 약속한다. 이분들은 교구 신부님들과는 달리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다. 일반 노동의 대가는 고스란히 공동체의 몫이다. 수도원의 하루 일상은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오전. 오후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도는 모든 수도생활의 중심이다. 때때로 교회의 요청과 선교 목적으로 이외의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삶의 핵심인 기도 즉 하느님을 찾는 삶이다. 이곳에서 만드는 것은 분도 출판사 인쇄소를 비롯해 성물과 목공예, 유리공예, 텃밭 등 다양하다. 작가 공지영은 이곳 베네딕도 수도원을 방문하여 <수도원 기행 2> 책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이곳을 소개하고 있다.
공지영은 아침에 기도를 하다가 숨이 가빠졌다고 했다. 가장 나 빠던 것이 그동안 마음공부를 했음에도 시련을 받을 때 자신에게 칼날을 들이밀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주변에서조차 잘못이라고 공격을 당해 다시 자신을 찔러댔다. 글 쓰는 거 외에는 아무 재주가 없어 무능했으며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에 하느님께 절규하며 매달리기도 했고, 광야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치만 그런 시련을 통해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왜관 수도 원외에 뉴욕 세인트 폴 수도원, 상트 오트리엔 수도원, 뭔 스터슈비르치흐 수도원, 쾰른 카르디날 솔티 하우스, 파리 기적의 메달 성당, 몬테 카시노 수도원, 수비아코 수도원, 카밀 돌리 회 산 안토니오 수녀원, 카밀 돌리 수도원, 아빌라 수도원 등 10군데 수도원을 방문하며 수도원 기행과 그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우린 2002년 천주교에서 부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대천사 미카엘+미카엘라이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남편과 갔었고 피정으로도 여러 번에 걸쳐 다녀왔다. 베네딕도 수도원은 밖에서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다. 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무 곳이나 사진을 찍어도 참 예쁘다. 그런데 기왕이면 그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수사님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무척이나 거룩하기 때문이다.
공지영 작가가 왜관수도원에 갔을 때 만났던 인영균 신부님은 몇 년 동안 스페인 라바날 데 까미노 베네딕도 수도원에 계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에게 많은 힘과 용기를 주셨던 신부님이시다.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신부님은 참 특별한 사제다. 2020년 7월에 왜관 수도원으로 다시 오셨다. 아직 출판사에 투고 중인 산티아고 순례기 가제 <노란 화살표를 따라서,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추천사를 신부님께 부탁드렸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