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동수는 전주 남원 출생으로 백제 예술대학 방송 시나리오 극작가 교수이다. 시집 <하나의 창을 위하여 > < 나의 시> <하나의 산이 되어> <그리움만이 그리움이 아니다> <겨울 운동장>, 수필집 <전라남도 사람들> <누가 사람을 아는가>, 평론집 <일제 침략기 민족시가 연구> <한국 현대시의 생성 미학> 등의 저서가 있다.
시적 발상과 창작의 차례
시(詩)란 자신의 감정 세계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시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거기에서 느끼는 시인의 새로운 생각, 즉 의미나 가치 발견이 중심(주제)이 된다. 시는 새로운 표현이다. 진부한 표현, 주변에서 흔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일상적인 표현은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이처럼 시적 흥취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표현은 결국 '죽은 표현'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싱싱한 표현 그 누구도 이제껏 써본 적이 없는 독창적인 표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시인들은 신기성(novelty), 강렬함(intensity), 생소함(strangeness)등을 추구한다. 시인은 독창성과 기교를 제대로 살려낼 때 재능 있는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는 함축적인 표현이다. 시는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망을 구축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비유나 상징 등의 표현기법이 활용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직설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그것과 유사한 대상물, 곧 객관적 상관물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는 보다 암시적인 상징성과 함축성을 띄게 한다. 그리고 시는 음악성을 지향한다. 시에 있어서 음악성, 곧 리듬과 운율이 적절히 가미되면 그 울림이 달라진다. 문학의 사유가 음악의 이러한 떨림과 잘 만나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시에서 음악적 가락, 곧 리듬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시의 감동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것을 얼마나 아름답고 효과 있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좌우된다.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다'(EP.poe)라고 했다. 시는 표현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표현(형식)은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켜 독자에게 정서적 고양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결합하고 다듬어 유기적 생명을 시(詩) 속에 불어넣느냐가 중요하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주제에 따라 시어를 선택하고, 선택된 시어들을 적절한 의미 단락으로 결합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체로 시인들은 세심한 관찰과 통찰력으로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본질에까지 이르려고 노력한다. 왜 그럴까? 그것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시인들의 관찰법이다. 문학은 이성과 직관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으려는 영감의 산물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먼저 대상의 객관적 상황을 살피고 다음으로는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등 주관적 인식의 통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기서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시이다. 한 편의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시인 자신의 인식과 정서만을 나열해서는 안된다. 체험을 질서화 형식화(fforming)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만한 감정의 나열보다는 줄거리를 갖는 이야기를 갖추었을 때 서정적 울림이 크다.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들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은 겨울 강가의 눈 내리는 풍경을 가지고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시는 마치 축약된 동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독특한 이야기체 화법으로 삶의 진실을 성찰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체의 화법은 보다 깊은 정서적 흡인력을 갖는다. 작품의 표면적 내용이 관심을 끄는 동안에 심층에 흐르고 있는 설화적 은유나 상징의 힘이 부지불식간에 시의 본질적 의미를 내면화시키기 때문에 무감각한 독자들을 일깨우는데 효과적이다.
시는 하나의 시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시상만 갖고 시가 완성될 수는 없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듯이 아무리 좋은 시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구체적인 언어 형식으로 엮어(형상화) 내 독자의 목을 축여주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물 속에 샘물이 그릇에 담겨 우리의 목을 축여 주듯, 한 편의 시가 감동적으로 읽히기 위해서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구성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대상과의 직면 단계 - 시의 원천 제공 / 둘째, 의문 제기 단계 - 시의식 / 셋째, 문제 해결단계 - 새로운 의미 발견
한 편의 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적 대상(소재)과의 치열한 대응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낚시꾼이 물속에 찌를 넣어놓고 물고기가 물기를 기다리는 고요와 참 잠의 시간과 같다. 그러기에 시인들은 평소에도 피상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한다. 대상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통찰이 있어야 어느 순간, 섬광과 같은 각의 세계가 펼쳐지면서 경이로운 아포리즘(Aphorism)이 얻어지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는 법열의 기쁨이 수반되었을 때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또 한 편의 시는 주제에 맞는 적절한 어휘(시어)가 선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된 어휘들은 앞 뒤 혹은 전후좌우 적절한 문장 구조로 배열되어야 한다. 아무리 시적 발상과 인식의 정도가 깊다 하더라도 묘사가 충실하지 못하면 초점이 안 맞는 사진처럼 상이 흐려지고, 상이 흐리다 보면 시의 내용 또한 흐리게 디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하고 만다. 묘사야말로 구체적으로 그려진 본질로서 어찌 보면 시의 힘은 이러한 묘사에 의하여 구체화된다고 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시를 새롭게 쓰기 위해서는 주변의 사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한 상식의 벽을 허물어 트리고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관념적 선입관도 비워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 건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문학의 언어는 일상 언어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신비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시는 일상 언어와는 달리 낯선 결합 규칙을 사용하여, 신선한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통찰력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몸과 정신에는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