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 - 나무가 말하였네

마음산책 / 고규홍 / 222page

by 신미영 sopia

https://youtu.be/1O8P9_u5XcA


저자 고규홍은 12년 기자생활을 했던 나무 칼럼니스트이다. 그 후에 전국을 다니며 나무에 관심 갖고 관련 책을 여러 권 출간하였다. 그는 2008년 한림대와 인하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저자는 시에 관심이 많아서 닥치는 대로 시집을 샀다고 한다. 서점에서 잡지를 뒤적이고, 서점 바닥에 앉아 나무 관련 시들을 베꼈다. 그렇게 시를 흡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길 위에 나섰다. 나무들이 들어왔고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저자에게 말을 건넸다. 오동나무를 보면 김선우 시인의 (오동나무)가 떠올라 헤벌쭉 웃었고, 자작나무를 보면 김영무 시인의 (겨울나무)가 떠올랐다. (상수리나무)를 보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 올린 건 박이도 시인의 시가 있어서다.(물푸레나무)를 보면 그 여자가 생각난 건 오규원 시인 때문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들은 저자에게 나무였고, 나무는 시였다. <나무가 말하였네> 시집에는 나무와 관련된 70여 편의 시와 작가의 고규홍의 서평이 실려 있다. 그는 바람대로 은퇴 후에 희랍어를 공부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첼로를 연주하며 살고 있을 듯하다.


나무는 바라보거나 곁에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많은 도움과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도와주고 공기정화 작용을 한다. 피톤치드가 분비돼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기도 하고 산림지대에서 방출되는 음이온 효과로 심신을 안정시킨다. 또 숲 속 동물들에게도 소중한 안식처를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에게는 나무에 관련된 추억들이 각자의 가슴에 자리한다.

나무와 관련된 추억이 다양하게 있는데 그중에 느티나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괴산에서 국민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학교는 집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서 어려서는 무척 멀게 느껴졌다. 학교는 30년 전통 있는 학교라 운동장도 넓었다. 학교 옆으로는 언덕에 고목 느티나무가 한그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600년의 세월을 견디며 단단하게 뿌리내린 근처에 가서 놀곤 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점심식사 후에 친구들과 자주 놀았다. 그중에 6학년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얌전하면서도 모범적으로 생활한 친구다. 그러다 둘이 일기를 쓰기로 했다. 비밀일기를 써서 가끔 바꿔 보았다.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일기를 쓰고 읽으면서 무척이나 마음이 설레던 것을 기억한다. 느티나무 아래서 친구와 일기를 읽던

시절에 나무는 꿈을 주었다. 나무와 관련된 시집을 사게 되었다. 가끔 읽으면서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에 실린 네 편과 시와 '겨울나무' 자작시를 소개해 본다.




나무가 말하였네 / 강은교


나무가 말하였네

나의 이 껍질은 빗방울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햇빛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구름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안개의 휘젓는 팔에

어쩌다 닿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굳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이 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1 / 권혁웅


느티,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게 있다

느릿느릿 얼룩이 진다 눈물을 훔치듯

가지는 지상을 슬슬 쓸어 담고 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느티가 흔드는 건 가지일 뿐

제 둥치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느티는 넓은 잎과 주름 많은 껍질을 가졌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발음하면

내 안의 어린것이 칭얼대며 걸어온다

바닥이 닿지 않는 쌀통이나

부엌 한쪽 벽에 쌓아둔 연탄처럼

느티의 안쪽은 어둡다 하지만

이런 것도 아니다, 느티는 밥을 먹지도 않고

온기를 쐬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한 번도 동네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저 현관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얘기도 아니다, 느티는 정자나무지만

할머니처럼 집안에 들어와 있지는 않으며

우리 집 가계(家系)는 계통수보다 복잡하다

느티 잎들은 지금도 고개를 젓는다

바람 부는 대로, 좌우로, 들썩이며,

부정의 힘으로 나는 왔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안이다

여기에 느티나무 잎 넓은 그늘이 그득하다




은행나무 / 곽재구


너의 노란 우산 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대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란 우산 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겨울나무 / 신미영


잎 진 겨울나무

가지가 뿌연 하늘을 받치고 있다

정성으로 돌본 열매를 떠나보내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바람을 맞는다


나에게도 언제

품어준 햇살이 있었던가

그늘 쉼터 있었던가


가슴으로 막아 보지만

앙상한 뼈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

관절이 불거지고 뼈마디가 시리다


겨울이 되니

비로소 남의 가슴이 보인다

상처도 보인다


이야기들이 눈처럼 뿌려지는 밤

그 사연 듣느라 겨울나무는

가지 세우고 귀를 열어 둔다


나무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봄에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 풍성한 나뭇잎으로 온통 자신을 덮는 풍성함이 있다. 그러다 점점 가을에는 나뭇잎에 깊이 있게 물이 든다. 어느새 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자취를 감추고 만다. 언제 나뭇잎을 있었던 적이 있었던 지 싶게 만든다. 봄에 싱싱했던 나뭇잎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빈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그것도 추운 겨울눈 바람이나 세찬 바람을 맞아야 하니 춥기만 하다. 몸을 드러낸 나무에 마디는 툭툭 불거진 관절처럼 보인다. 노인들이 추우면 뼈마디가 시리듯이 나무의 뼈마디도 시리다는 느낌을 가졌다. 잎에 가려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내 상처는 물론 남의 상처나 외로움도 보인다. 겨울에 뿌려지는 눈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겨울나무는 꼿꼿하게 가지 세우고 귀를 열어 둔다.

나무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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