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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Sep 14. 2021

책 리뷰 - { 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

레벤 북스 / 황인수 글. 그림 /139page

저자 황인수는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책 읽기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 신안 섬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사는 것과 배우는 것, 노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산다. <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 책은 글이 많지 않고,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공간이 많아, 시집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시집은 아니고 저자의 그림 에세이 정도라고나 할까? 여백이 많아서 편하게 부담 없이 읽기 좋다. 캘리 그라피로 쓴 제목의 글씨가 정겹다. 쓸쓸한 밤에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따뜻한 안부를 물어 온다. 더불어 독자들은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고독을 통해야만 사람은 진정으로 홀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자는 책을 썼다고 한다.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채울 것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내 안에 사는 따뜻함, 그 다정함을 만날 때 이웃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실은 우리 안에 다정함이 살아 있고 사랑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저자는 짧은 글과 그림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 되새김질하던 마음속 생각을 모아놓고 보니,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이 책이 오래된 친구가 보낸 다정한 안부와 같은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쓸쓸한 맘의 다정한 안부>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저자는 각 장마다 좋은 음악 네 곡을 QR코드로 저장해 두었다. 책을 읽을 때 스마트 폰으로 들으면 '소리 나는 책'을 즐길 수 있다. 오래된 책꽂이도 창가의 화분도 고즈넉한 얼굴로 안부를 전해 온다. 저자는 글과 그림, 음악에 담긴 마음이 독자 마음에 가닿기를 바란다며 다정하게 소식을 전한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침묵 속에서 용기 내어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는 거다. 첫 음을 내기 시작하면 이어져 온 고요가 다칠 것 같아, 차마 시작을 못 하겠는 그런 기분이다. 그렇치만 잔뜩 부풀어 길을 찾는 쉼표들에게 바깥세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없이 입 안에서만 굴리던 가락 같은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저자의 글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하루를 시작하며

삶은 잔자분한 일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처럼

흐트러진 담요를 펴고 베개를 제 자리에 놓고

시트를 펴는 것은

가끔 어떤 의식처럼 느껴진다.

자고 눈을 뜨고 일어나는 일이

허투루 있는 게 아니라는,

내 삶의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는 어딘가

내가 잘 모르는 데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의식처럼




아버지

내가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그것은

내 안의 어린아이가

아직 자애로운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아직 엄격한 아버지와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https://youtu.be/bkf_RDk0 tq0


시련

삶이 온전히 자기 주도권 아래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제 뜻대로 안 되는 일, 고통 문제들이 제 삶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것을 배제하고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일부를  배제하고 외면하는 일이다. 기쁜 일도 내 삶이고 힘든 일도 내 삶이다. 나보다 더 큰 존재를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삶이 훨씬 더 크고 심오한 신비가 된다.




바람 속 나뭇잎들

식당 맞은 편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밤나무, 버드나무, 산벚나무...

나뭇 이플 하얀 등때기들이

푸른 숲을 배경으로 유난하다.


바람이 흔들면 내 마음이 흔들리고

미움이라 여겼던 것들, 슬픔이라 여겼던 것들,

아픔이나 외로움이라 여겼던 것들 함께 흔들리며

반대쪽 숨겨졌던 모습을 보여준다.

아! 그것이 그냥 미움만은,

슬픔이나 외로움만은 아니었구나!




내어줌

삶은 누구에게 나를 내어주는가의 문제이다.

누구에게 나를 주는가

그렇게 나를 주면서 나는 무엇이 되어간다.

나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

그 어리석음의 귀결은 압축된 고통일 뿐이다.

매일 나를 주지 않고 꼭 붙들고 있는 사람은

어느 날엔가 한꺼번에 나를 빼앗기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https://youtu.be/PIOhRloFBHE


있는 그대로

어떤 날은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기분 좋은 노래를 부른다. 어떤 날은 음식이 맛있고 어떤 날은 사람들이 반갑다. 그림이 잘 그려지는 날은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있다.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손에 떡을 쥐고 빵을 찾는 아이처럼 살지 말아야지




빈방

비어있는 방처럼 살아라

누가 머물고 싶어 하면

푸근한 침묵으로 맞아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겠다 하면 또

따뜻한 침묵으로 인사하는 방


비어 있는 방처럼 살아라.

시간이 그 방의 유일한 장식물이고

고요가 팻말인 방

오는 이는 설렘에 들뜨는

침묵이 가득한 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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