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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Nov 26. 2021

영화 리뷰 -《 국제시장 》

2014년 한국/ 감독 윤제균 / 126분

국제시장 영화는 2014년 감독 윤제균의 작품으로 1400만 명이 봤던 히트작이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이야기다. 6,25 전쟁 때 피난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영화는 한 마리 나비가 시장을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옥상에서 이야기하는 두 노인 앞에 앉는다. 주인공인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 노부부다. 덕수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꿈을 얘기했다. 6.25 전쟁으로 흥남에서 어린 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지고 부산에 내려왔다. 동생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독일 탄광촌에 가서 일하다가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났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왔던 영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 월남전에 참가하여 싸우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몇 년후에 고모가 하던 가계를 인수받아서 운영했다. 사는 게 고달팠던 그는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고집이 세고 자주 화를 낸다. 손녀까지 할아버지 화내면 무서우니 화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이제는 노인이 돼버린 그들의 치열했던 삶을 조명했다. 살고자 애썼던 그들의 삶은 얼마나 기구하고 파란만장했을까?

https://youtu.be/lOSufq-Km7s

국제시장 흥남부두 장면과 (흥남부두 )노래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 피난길에 눈이 내린다. 사람들 행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중공군이 흥남으로 진입하고 있다.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산인산이고 아수라장이다. 미국 군함은 군수품을 실었기 때문에 사람 태울 자리가 없다. 다행히 군장비를 바다에 모두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웠다. 덕수 등에 업혀 배에 오르던 막순이를 누가 붙잡는 바람에 바다에 떨어졌다. 급박한 아버지는 덕수를 앞에 세워 놓고 말씀하셨다. "명심해라, 이제부터 니가 가장이다. 가장은 가족들 잘 지켜야 한다. 먼저 가 있어라. 내 걱정은 말고~" 막순이를 찾으러 갔던 아버지(정진영)는 배를 타지 못했다. 덕수는 어머니(장영남)와 다른 동생들을 데리고 배에 탔다. 1950년 12월 23일 오전 11시 메러딕스 빅토리아호 14,000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그러면서 모든 부대도 흥남부두에서 철수했다. 1951년 초 부산 국제시장이다. 시장에서 '꽃분이네' 잡화점을 하는 고모(라미란) 집에 갔다. 주정뱅이 고모부를 피해 죽을 끓여 주고 구석진 방을 내준다. 밖에서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표어를 붙이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 미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도망가고 쫒는다. 이승만 대통령은 종전을 선포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조인했다. 덕수는 막순이를 찾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하여 묻는다. 자신이 막순이를 잃어버리고 아버지도 함께 오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다.


 1963년 동생 승규가 서울대에 합격했다. 달구는 등록금을 걱정하는 덕수에게 독일 광부를 지원해 보라고 했다. 책상 앞에 써 놓은 '인내는 쓰다. 그 열매는 달다' 명언이 보인다. 아버지 사진 앞에서 술을 마시던 덕수는 신세 한탄을 했다. 독일의 광부를 가기 위해 면접을 본다. 체력검사로 쌀가마니 들어 올렸는데 달구는 실격이고 덕수는 합격했다. 모두 애국가를 불러 투철한 애국심으로 3년 계약직으로 독일에 갔다. 광산에서 갱 내려갈 때 매번 '살아서 보자'라고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굴 안에서 새까만 몸으로 먹고 울고 그들은 그렇게 생활해간다. 잡지를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느 날 한국 간호사와 광부들의 댄스파티가 열리고 사감도 왔다.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영자를 만나게 된다. 몰래 간호사 학교를 찾아가 먹고 싶은 것을 해준다. 둘이 놀러 가 배도 타고 손도 잡으면서 사랑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탄가스가 폭발했다. 업자 측에서는 위험을 핑계로 거부하지만 한국 광부들은 곡괭이와 삽으로 그들을 구한다. 덕수와 달구도 간신히 살아났고 생명이 위독하다. 덕수는 어려운 순간마다 늘 아버지와 말을 주고받는다. '산다는 게 힘듭니다. 아주 힘듭니다' 하면서 정신없이 되뇔 때 구조됐다.

광부 덕수와 간호사 영자


바깥에서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간호사 영자 덕분으로 완쾌했고 비자가 만료되어 덕수는 귀국했다. 고모는 원단 가게를 인수하라고 한다. 이때 앙드레김 선생이 가게에 와서 엘레강스한 것을 찾는다. 김봉남 사장님이 가방을 놓고 가서 부른다. 영자도 독일에서 돌아왔다. 3개월 전에   독일을 떠나오기 전날 혼전 관계로 임신해 돌아온 영자와 결혼한다. 덕수는 공부해서 해양대 합격했다. 고모가 돌아가시고 고모부가 가게를 처분하려고 해서 덕수는 고모네 가게를 인수한다.

월남전에 참전 중인 덕수와 달구

신혼의 행복도 잠시 여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다시 한 번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다. 해양대 합격으로 선장의 꿈은 접어 둔 채 덕수는 1974년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가했다. 영자는 왜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사느냐고 울부짖지만 아버지가 유언처럼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게 된다. 베드남전에서 폭탄이 터졌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상황도 생겼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건 모두가 거짓말이다.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전선에서 베트콩에게 걸릴 뻔한 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도망치다 보니 한국 군인 앞이다. 가수 남진이 왔고 노래도 가르쳐주고 사인도 받는다. 피난을 사정하는 베트남인들을 태우다 총으로 저격당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물에 빠진 아이를 올려주다 덕수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전은 종료되었다.


덕수와 영자의 결혼식


부산에 교복 입은 여학생이 보인다. 이웃집과 싸우던 영자는 돌아온 덕수의 다친 다리를 보자 울음을 터트린다. 딸이 결혼하는데 손을 붙자고 들어갔다. 가게를 팔으라는 말에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가서 담배를 피운다. 막순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뜨겁던 그해는 1983년 여름이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여의도 방송국 앞은 헤어진 가족을 찾는 벽보와 바닥에 글들이 빼곡하다. 방송으로 연결해 서로 자신들의 과거를 확인하며 가족을 찾는 순간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이때 전 국민 모두가 티브 앞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며 감동했다.

https://youtu.be/pNctXaItsSI

패티김(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노래

1983년 KBS 방송국 이산가족 찾기


 덕수도 윤막순을 찾기 위해 방송에 나갔다. 찾은 거 같다고 해서 방송까지 했는데 아니었다. 다시 연락이 왔고 미국 LA로 연결이 되었다. 귀 뒤의 점과 간직했던 저고리를 확인하는 순간 막순이였다. 미국에 입양 가서 살던 막순이가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끝내 찾지 못하고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내 약속 잘 지켜지예, 막순이도 찾았고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그런데 내 정말 힘들었거든예"

"덕수야, 고맙다"
 
"아버지 보고 싶었습니다."

 "내도 네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예전 저고리를 끌어안고 덕수는 오열했다. 다시 덕수와 영자가 옥상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첫 장면이다. 그래도 결혼하고 서로 행복하게 잘 살았으니 완벽하게 꿈을 이루었다고 둘은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시장 영화는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역사다. 6. 25 사변 피난으로 부산에 내려와 살던 사람들과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였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총을 맞고 부상을 입고, 고엽제 후유증을 겪으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와 형제들의 이야기였다. 시장 바닥에서 고달픈 삶을 살았던 그래서 억세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했던 영화는 원단 가게와 관련 앙드레 김이 나오기도 하고, 월남전에 같이 참전했던 가수 남진도 나온다. 70년대 대립이었던 남진과 나훈아가 비치기도 하고, 씨름 이야기도 언급이 된다. 특히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비중 있게 다뤘다.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다 떨어졌던 막순이를 찾는 장면은 감동 자체였다. 당시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기쁨을 누렸다. 국제시장 이야기는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다. 자신의 꿈이 있었지만 형제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며 일했다. 형제들이 많았던 집안에 장남이나 장녀는 가장이라는 책임을 지고 힘겹게 삶을 살아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으로 살지 못했던 그분들께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살아보라고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시고 노인이 되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표어를 가슴에 늘 새기고 살았던 그분들을 기억하며 노고에 감사와 위로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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