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신은혜는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천천히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꿈꾸며 만들어 가는 중이다. 하와이 여행을 하고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새벽 공기와 더불어 차를 마시고,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5층 옥탑에서 살았는데 인왕산과 경복궁이 보였다. 옥상은 주로 빨래를 널거나 친구들이 오면 삼겹살 구워 먹는 용도였다. 일출이 하와이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선명한 새벽빛에 감동했다. 신선한 기운과 새들의 지저귐도 함께 듣는다. 그런 후에 뭉친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고 식물을 살피고 글을 쓴다. 출근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음이 뿌듯하다.
언젠가 정원을 가꿔야지
언젠가 서핑을 배워야지
언젠가 훌라를 배워야지
언젠가 고양이를 키워야지
지금, 나는
그 언젠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입니다.
문제가 없던 나날들이었다. 저자는 되고 싶었던 카피라이터도 되었고, 다니고 싶었던 회사도 다녔다. 친구처럼 가까운 팀 동료들과 업무도 편하게 느껴질 무렵에 일 년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충동이 들자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았다. 평소에는 티셔츠 한 장도 충동구매하지 않는 저자였다. 수많은 어제와 오늘, 내일로 미뤄진 인생,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삶이지만 딱 일 년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바로 하와이로 떠나게 되었다.
저자는 대학 때 조기 졸업을 목표로 학점을 신청했었다. 재수로 뒤처진 일 년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무리한 학점으로 힘들어 휴학했다. 앞서 가려다 뒤처진 꼴이 돼버렸다. 이때 열 달을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된 업무는 계산하고 음반 주문과 신곡을 진열대 세워 놓는 것이었다. 매일 신경을 썼으나 손님은 한자릿수에 그쳤고 세 번 월급을 받고 가게도 문을 닫았다. 다음은 서점 문학코너였는데 한산했다. 일을 인정받았지만 전공과 무관한 알바를 하는 게 불안했다. 누구는 인턴을 하고, 누구는 어학연수 가고, 누구는 여행 갔다는 소식을 접할 때 두려웠다.
저자는 휴학 때 아르바이트비로 생활하고 남은 돈으로 2006년 12월 인도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도는 기차가 수시로 연착돼도 조급해하지 않는 나라, 가난이 수치가 되지 않는 나라, 시간을 돈에 비유하지 않는 나라여서 좋았다. 배낭에 옷가지와 카메라, 생필품을 담고, 가이드 북을 들고 떠났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구글 앱도 없었다. 게다가 저자는 영어실력도 형편없었는데인도에서 네 명을 만나 같이 여행하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제시간에 온 적 없는 기차를 욕하지도, 길거리 음식을 거부하지도, 틈만 나면 사기 치려는 장사꾼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불평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인도에 놀라고 아프고 사랑했다. 인도의 눈망울과 독특한 체취, 느긋한 천성에 만족하고 돌아왔다. 이십 대에는 재수와 휴학을 하고 취업 준비하면서 뒤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보니 이런 경험들이 남은 인생에 두고두고 힘을 줄 거라고 믿었다. 미래와 지금의 저자에게 새로운 배움과 용기를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하와이를 가기 위해 수영을 등록해서 배웠다. 어느 정도 수영을 배우자 일을 하다가도 수영 생각이 났다. 강사가 수영대회에 나가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찍 수영 갈 생각에 업무도 미루지 않았고 잠도 일찍 잤다. 하와이 여행 갈 생각에 수영을 시작하고 창피함을 견디고 덕분에 즐거움을 알아갔으며 스트레스도 풀렸다. 여행 갈 하와이에 관심 갖고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알람 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뜹니다
오늘 먹을 점심을 직접 요리합니다
TV를 끄고 저녁노을을 감상합니다
특별한 것 하지 않아도
특별한 하루가 되는 오늘은
월요병이 없는 월요일입니다 (30p)
시한부 여행은 지금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새로운 용기를 준다. 퇴사하기로 작정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일 년을 쉬기로 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짰다. 준비기간 동안 열심히 일을 했고, 저축했고, 수영을 배웠고, 영어 공부를 했고, 운전 연수를 받았다. 새직장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가족에게도 백수를 선언했다. 결심은 충동적이되 실천은 꼼꼼했다. 끝이 있는 것을 알기에 소중하게 쓸 것이다.
한자리에 몇 시간이고 볼 수 있는 건
텔레비전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와이의 석양을 보기 전까지 (38P)
하와이는 오하우, 빅아일랜드, 마우이, 카우아이, 몰로카이 등 8개의 대표적인 섬과 1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오하우 섬에 살았고 가끔 이웃 섬으로 놀러 간다. 하와이 알라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빅아일랜드에 도착한다. 매직 아일랜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원이고 제주 8배의 크기라서 갈 곳이 많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부족해 차 없이는 식당조차 가기가 어렵다. 차를 렌트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운전하는 방식이 달라서 헷갈린다. (택시나 패키지 투어도 가능하지만 비싸다.) 그래도 렌트를 하려고 했으나 저자의 카드가 작동되지 않았다. 걸었더니 무거운 배낭, 내리쬐는 태양, 시작부터 꼬인 계획, 걸을수록 불행해졌다. 그때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차를 타게 되었다.
저자는 빅 아일랜드 사람들의 천사 같은 마음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후에는 렌터카를 빌려 운전에 적응해서 여행하게 되었다. 서로가 방해하지 않으면 각자의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해 질 무렵 한 시간 전에 태양이 달궈 놓은 따뜻한 바닥을 저자는 좋아한다. 책을 펼치고 읽지만 읽지 못하고 덮게 된다. 음악도 끄고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태양이 바다로 이동해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틀어 놓은 것처럼 웅장하고, 어떤 날은 오로라처럼 섬세하다.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거 하나를 고르라면 저자는 주저 없이 자연에 귀 기울이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다.
집에 가는 빠른 길을 두고
풍경이 예쁜 길로 돌아서 갑니다
시킨 음식을 바로 먹지 않고
해변으로 들고 가 먹습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합니다
느리게, 알차게 살아갑니다(66p)
"오늘은 아빠 물개가 아기 물개에게
수영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소식이 뉴스에 나오는 곳,
하와이
하와이에서 생활할 집 구하기는 서울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교차로 같은 한인 생활 정보 신문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건에 맞는 집을 발견해 계약하려고 전화한다. 그러면 주인이 세를 놓지 않거나 제시한 가격보다 올려서 흥정해 온다. 십여 군데를 돌아다녀 계약한 첫 번째 집은 창문을 열면 날아 모아나 비치가 펼쳐지는 집이었다. 밤에는 아파트 수영장에서 별을 보며 수영할 수 있는 꿈같은 곳이었다. 한 달 게약이 끝나고 다음에 이사 간 집은 침대 시트가 좋았고 대자연의 하늘, 거실 창문에서 보았던 쌍무지개, 공원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와이 명소 중에 가장 좋은 곳은 저자의 방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자는 하와이에 온 지 석 달 정도 되었을 때 극심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아주 당혹스러운 감정이었다. 퇴사하기 전에 세웠던 계획은 일 년간 세계 일주를 하는 거였다. 먼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한 달, 하와이에서 다섯 달, 북미와 남미에서 두 달, 유럽에서 두 달, 인도와 네팔에서 한 달, 그리고 귀국하기,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도서관에서 세계 일주 관련된 책들을 빌렸다. 외로움의 근원은 깨닫고 보니 완벽하게 혼자 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초심을 되새기는 대신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고 떠들고 한바탕 수다를 떤 후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 함께 이뤄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30여 가지의 식물을 키우고 있다. 허리춤까지 오는 고무나무와 몬스테라, 팔뚝 정도 되는 사계 치자, 콩고, 칼라 페페, 손바닥 크기의 다육이부터 손가락만 한 선인장까지 옹기종기 살고 있다. 유칼립투스와 몇 가지 다육이는 일찍 곁을 떠나보냈는데 사실 지나치게 관심이 많아서다. 식물은 많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물이면 충분하다. 작고 겸손한 요구 그것만이라도 들어주고 싶어 볕 드는 곳과 바람을 맞게 해 주었다.
저자는 1년을 쉬고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했다. 광고 내고 카피 쓰고 아이디어 내는 일은 여전히 좋아해서 어느 회사던지 취직이 되면 잘 적응할 거라 믿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보았다. 일하기를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해 준 말이 있다. 일은 3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중하지만 나머지 3분의 2가 좌우할 만큼은 아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 혼자서 못하면 다 같이 하면 된다. 일을 그만두고 삶의 곳곳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았기에 가능했다.
분갈이한 화분이 새싹이 올라올 때 행복했고, 처음 시도한 요리가 맛있어서 뿌듯했고 소설을 읽으며 밤새 울었다. 친구와 분노에 동참하고, 잘 마른빨래에서 햇볕 냄새를 맡으며 미소 지었다. 주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여유와 글을 쓰는 기쁨도 얻었다. 저자는 1년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걸으면서 오늘을 생각한다. 일하면서 무엇 때문에 화났고 무엇 때문에 행복했는지, 왜 언짢았고, 왜 웃었는지 하루를 헤아린다. 좋은 사람이 곁에 많아서, 웃을 일이 있어서, 날씨가 좋아서, 공기가 맑아서, 길이 예뻐서, 걸을 수 있어서 모든 게 감사해진다, 저자는 최선을 다해 지금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