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미영 sopia Oct 29. 2024

시아버님을 요양원에 모셨다 2

어느 정도 입소에 대한 절차를 마치고 나자 요양원에서 신을 아버님 실내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참을 걸어 잡화점에서 편한 신발을 사서 다시 요양원에 들렀다. 담당자에게 전달하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서 아버님께는 인사도 못하고 그곳을 나왔다. 부모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죄송했다. 이튿날에 아버님이 막내 서방님과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의 휴대폰을 놓고 온 게 이런 상황을 만들 줄 몰랐다. "나를 왜 이곳에 데려다 놓았느냐?"며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 요양원이라는 걸 알게 되신 것이다. 차마 요양원이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치매 때문에 한 달 정도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다고 감추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셨을 것이다. 입소 후 삼일째 되던 날 막내 서방님 부부가 아버님을 찾아뵌다고 했을 때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좀 더 있다가 천천히 가라고 얘기를 했는데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을 뵈러 간 듯하다. 그런데 그날 아버님의 상태는 악이 바칠 대로 바쳐 엄청나게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당시에는 듣지 못했다. 삼 형제와 며느리 셋이 모여 어머님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제사를 드리던 날 식사 자리에서 막내 동서가 얘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말씀까지 서슴지 않으셨다고 하니 당시에 아버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알 듯하다.

아버님 배낭과 물건들

"내가 너네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느냐?"며 올해 예순살인 막내아들의 빰까지 때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아직 더 혼자 생활하게 해 드렸어야 했나?'  ' 전혀 요양원에 올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셨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는 식사 후에 요양원에 계신 아버님께 가 보기로 했다. 다 모였을 때 같이 가보고 싶었다. 추석명절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서 혼날 때 혼나더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각오하고 요양원에 들어섰다. 사무실 직원에게 아버님의 존함을 알리고 자식들이 면회를 왔다고 신청했다. 방으로 가니 누워 계셔서 "아버님~!"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돌아 누우시면서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면서 어떻게 왔느냐며 반가워하셨다. 우리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의외라서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요양 보호사가 다른 분이 방에 계시니 방해되지 않게 복도에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우리는 복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버님 갑자기 요양원으로 오셔서 서운하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아냐, 여기 좋아. 밥도 주지, 병원도 데려다 주지, 그리고 요양사들이 딸처럼 잘해 주는데 뭘~"이라며 좋아하셨다.

아버님과 둘째 동서네 부부

정말 표정도 밝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한시름을 놓았다. 우리는 혼날 각오를 하고 이곳에 왔는데 좋다고 하시니 얼마니 다행인가? 물론 속으로 서운함은 있으실 것이다. 그래도 고심해 보시니 홀로 식사나 화장실 가는 문제라던지,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하셨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서 이곳에 조금씩 적응해 가셨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적응하시지 못하고 계속 힘들어하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아버님께 사간 간식을 드리고 요양사분들에게도 음료를 드렸다. 환의를 입고 계시니 따로 옷들은 없어도 된다. 실내화가 좀 작다고 하셔서 그것만 다시 사다 드렸다. 그 뒤로 아버님께 번갈아가며 요양원에 들렸다. 삼형제외 며느리 손주들이 있으니 시간이 될 때 가보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집에 가서 뭘 갖고 오고 싶다는 얘기를 하신다. 아직도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만 그렇지 이제는 혼자 생활하신다는 건 힘든 일이다. 자식들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자주 집으로 쫓아가보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면 아버님이나 자식들도 한시름을 놓는다.

10월 22일이 아버님 생신이라 10월 19일 토요일 오전에 요양원을 방문했다. 아버님은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생활해 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하신 게 당연 있으실 게다. 아버님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힘들어하셨다. 그동안 치매 약도 꾸준히 드시고 치료를 받으면서 몸상태가 좋아지신 듯했다. 밖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고 자유롭게 하는 게 없다 보니 당연히 그러실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버님이 예전처럼 건강하게 다니실 수 있지도 않은데, 요양원에 계신 게 좀 싫으신 듯했다. 다시 자식들을 만나니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도 얼굴은 좋아지신 듯했다. 작은 탁자 위에 가져간 반찬과 미역국 과일을 올려놓고 요양 보호사에게 부탁한 국그릇에 가져온 미역국을 담았다. 천천히 반찬과 국을 드시면서 좋아하셨다. 많이 드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드셨으니 다행이다.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생신 노래를 불러 드렸다. 촛불을 세 번에 불어 끄시며 아직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셨다. 포도가 장식된 사랑스러운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드렸다. 다음 면회할 분이 계시다고 해서 우리는 서둘러 가져온 방울증편 4박스와 귤 2박스를 관계자분들께 드렸다.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나눠 드셨으면 해서 준비해 온 것이다. 시아버님은 아직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신 것 같다.  요양원 밖 생활이 많이 그리우신 듯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