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골라 햇볕에 잘 말린다.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세탁된 단어를 사용하는 일은 퍽 멋진 일이다. 평소에 얼마나 따듯한 생각을 많이 해야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는 것일지 가늠해 본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귀하다. 욕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정한 말도 숨 쉬듯이 내뱉지 못하기 때문일까. 달달한 음식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때그때 체화되어 나오지 않는다. 내 안의 자양분을 예쁘게 가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영양분도 주고 소중히 보살핀다.
말이 많은 사람은 말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 생각 없이 뱉는 말을 지양하기 위해 말하면서 상대가 기분 나쁘게 듣진 않을까 순화한다. 이런 작업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관계를 위한 작은 노력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헤아리게 됐다.
MBTI 검사를 하면 F가 90% 이상 나오는 인간이지만, 일을 하면서 내가 T가 됐나?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때는 솔직한 것이 장점이라며 명확한 피드백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탕발림보다는 발전을 위해 문제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물론, 마음이 여려서 상처를 자주 받는 사람에게 전할 때는 더욱 어렵다. 달콤한 말은 잠깐의 기분을 좋게 하지만 객관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부터가 오류였다. 나 또한 주관적인 의견을 곁들이는 것이었으므로.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100% F나 T인 사람은 없다.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기도 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비율이 있을지언정 사고형은 차갑다고 오해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따뜻함을 전할 수 있고,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을 한다. 해결책만 바란다고 해서 감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당신도 듣고 싶어 한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내 얘기 좀 들어줘"라는 행간의 의미는 쉽지 않지만 공감에 필요한 요소이다. 이럴 때에는 아부를 위한 가식과 구별되는 진심으로 얘기한다. 영혼이 없는 말일지라도, 그 순간의 기분을 좋게 하는 언어였다면 돈 들이지 않고 선물을 주는 게 아닐까?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기분이 반전되는 경험을 만들 수도 있는 게 언어이다.
가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영감을 받는 단어를 듣거나 책 속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만나면 보물찾기 중에 보물이라도 만난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 좋은 것은 흡수해서 나의 언어생활에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의도치 않게 내 말에 위로를 받는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기쁘다. 나의 작은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니 내게 더 좋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되려 감동을 받는다. 오그라들어도 표현은 해야 알고, 하면 할수록 는다.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며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에 나부터 실천한다.
썼다 지웠다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수정하며 퇴고할 수 있는 글과 다르게 그대로 노출되는 말을 예쁘게 하기 위해 연습해야겠다. 언어 장인, 언어의 마술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포근한 이불 같은 단어를 고르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어여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