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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라 Oct 21. 2024

마약 토스트에는 마약이 들었나

먹는 걸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런 날이 있다. 문득 나를 위한 요리를 하고 싶은 날. 설거지가 귀찮아서 미뤄왔던 요리를 하게 된 건 마약 토스트 레시피를 보고 나서였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습관처럼 SNS 피드를 내리다가 눈에 띈 토스트. 이름부터 마약이라니 얼마나 맛있을까?


먹는데 항상 진심인 나는 음식을 보며 맛을 상상한다. 미친 듯이 배가 고팠고, 마침 집에 식빵이 있다. 계란과 마요네즈는 냉장고에 늘 있는 아이템이니 문제는 없었다. 지체할 수 없어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경보를 하며 집에 도착했다.


밥도 먹기 전에 식빵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좋아하는 접시를 꺼냈다. 물론 손은 먼저 씻었다. 평소에는 레시피를 잘 보지 않는데 이 순간을 위해 꼼꼼히 숙지했다. 처음 해보는 요리였으니까. 제발 맛있기를 바라면서 식빵 테두리에 마요네즈를 쭈욱 짜서 사각형을 그렸다. 다음은 계란의 차례다. 날계란을 톡 깨서 가운데 안착! 성공이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되어가는 모습에 요린이의 마음은 설렜다. 노른자를 포크로 콕콕 찌르고 설탕을 솔솔 뿌려줬다. 이제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만 돌리면 끝이다. 바로 집어넣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전자레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동동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호들갑이냐 할 수 있지만 나에겐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너무 많이 돌린 건 아닐까? 중간에 멈출까? 하면서 정지 버튼에 손을 갖다 대었지만 꼬박 기다렸다. 강아지도 아닌데 주인이 “기다려”라고 말한 것에 반응하기라도 한 것처럼.


드디어 완성이다. 너무 많이 돌린 건 아닐까 했는데 비주얼은 그럴듯했다. 이제 시식의 시간, 뜨겁거나 말거나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와 마요네즈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이렇게 맛있었나? 빵과 만나서 이런 맛이 나는 건지 단짠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이래서 마약이라고 하는구나를 바로 납득할 수 있는 맛이었다. 멈출 수 없었다.


계란 반숙을 좋아하는데 한 번 더 크게 앙하고 물으니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 허겁지겁 먹었다. 이번에는 단짠단짠에 고소함까지 추가되어 리듬을 타며 먹고 있는 날 발견했다. 맛있는 음식은 나를 춤추게 한다. 이렇게 사소한 행복을 느끼며 마약 토스트를 추가했다.


원래대로라면 파슬리도 뿌려주라고 했는데 요리를 잘하지 않는 자취생의 집에 파슬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리필을 하고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우유를 꺼내 투명한 유리컵에 가득 채웠다. 꿀꺽꿀꺽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목구멍에 들이부으니 세상 개운하다. 빵과 우유의 조합은 역시 배신하지 않는다.


다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배가 차고 만족스러우니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보송보송한 털 수세미에 물을 묻혀 세제를 꾹 눌러 짰다. 살살 비벼주니 거품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햇빛이 좋은 날 잔디가 있는 마당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새하얀 이불 빨래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뽀득뽀득 닦으니 기분까지 깨끗해졌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제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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