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대구에서 신천지 사태가 촉발된 후 14개월이 흘렀다. ‘사상 초유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온 나라와 전 세계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낸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니, 마치 14년쯤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사회 변화를 분석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와중에 나의 일상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돌아본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수북수북' 독서 모임이 줌을 이용한 온라인 모임으로 급전환된 일이었다. 한두 달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코로나 사태는 1년을 훌쩍 넘기는 팬데믹이 되어버렸다. 그때 '수북수북'의 일정을 코로나가 지나간 후로 연기할까 하는 고민을 잠깐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만약 그때 연기했다면 과연 오늘의 '수북수북'이 존재했을까?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던 수북수북 시즌 1의 경험은 나의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진화의 시작이었다. ‘장벽은 우리를 가로막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라는 랜디 포시의 말을 힘입어 장애물 경기를 하는 심정으로 시즌 1을 완주했더니 그 다음에 찾아온 도전을 즐길 수 있었다.
두 번째 도전은 대학 강의였다. 개학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강의 의뢰를 받았다. 수북수북에서 화상채팅 도구를 사용한 경험이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기에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를 사용하여 강의해달라는 요청에 응했다. 팀즈는 줌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은 도구였다. 나는 수업의 효율성을 위해 PT파일을 공유하고 출석 시점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간 채팅창을 사용했다. 상담 관련 수업이었기 때문에 실습이 필요하여 소그룹 대화방을 개설하여 조별 활동을 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사흘 전에 조장들을 따로 만나 조별 활동을 이끄는 연습을 시켰다. 강의와 조별 활동을 한 후에는 전체 학생들을 다시 만나 개념을 이해했는지, 실습이 잘 이루어졌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매주 조장 보고서를 메일로 받아 조장들의 활동 상황과 애로사항을 접수했다.
이렇게 진행한 수업은 학생들의 표정과 태도로 전달되는 반응을 알기 어려워 답답했지만, 학기 중 두 번 제출하도록 한 학생들의 경험보고서를 통해 그들이 수업에서 무엇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다음 도전은 병영 독서 지도 수업이었다. 나는 2020년 2월에 병영 독서 코치에 선발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강사 워크숍과 수업이 계속 연기되다가 간신히 10월부터 경북 예*의 공군부대로 강의를 하러 갔다. 도중에 코로나 3차 유행이 발발하여 6회 수업 중 3회만 대면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라인으로 수업했다. 군대라는 기관의 특성상 비밀유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화상채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비대면이라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양질의 수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짧은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들어 네이버 밴드에 업로드하고 수업계획서를 메일로 보내 담당자가 출력해놓도록 하고, 수업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해놓고 큰 소리로 통화했다. 그런 실정이었으니 집중이 어려워서 주어진 수업 시간 2시간 중 한 시간도 하지 못하고 끝내야 했다. 담당자가 병사들의 활동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준 것을 보고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병사들과 이미 안면을 터 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후반 3회 강의는 애만 태우다가 형식적으로 끝내버린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어두웠다.
올해 1월에는 한 대학의 미래인재 양성사업단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세계 시민교육 특강에서 한 꼭지를 맡게 되어 ‘with-코로나 시대의 세계 시민교육; 독서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마련한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 보조 인력의 지원을 받으며 강의할 수 있어서 매우 편안하고 여유 있게 진행했다. 50명 넘는 인원이 접속했기 때문에 집중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독성 높은 PPT를 만들고 수강자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도 많이 만들었다. 가장 열심히 참여한 사람을 선발해서 커피 쿠폰을 상으로 주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니 마치 TV 프로그램 하나를 끝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조 진행 요원 두 사람이 화면과 채팅창에서 수강생들의 답변과 질문을 확인해서 바로바로 보고해 주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인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독서 모임이나 강의 외에 가족 모임을 화상채팅으로 진행해보기도 했다. 지난 연말 5인 이상 집합금지령이 내려져서 가뜩이나 우울한 노인들이 더 우울해하실 것 같아 줌으로 랜선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획해보았다. 한국과 미국에서 7가족이 참여했다. 상품을 걸고 퀴즈와 장기자랑을 했다.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가장 즐거워했다. 부모님은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참여하게 해드리고 나는 방에 들어가서 사회를 보았다.
화상 채팅 도구를 사용하기 전 나는 카카오 브런치 계정을 하나 개설하고 있었는데 팬데믹 이후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계정도 하나씩 개설했다. 이 플랫폼들에 콘텐츠를 게시하면서 나는 사진 올리는 법, 해시태그 다는 법, 텍스트를 변형하는 법, 이모티콘 사용법 등을 배웠고 한 플랫폼에 올린 콘텐츠를 다른 플랫폼에 공유하는 법도 배웠다. 이런 플랫폼들은 내 콘텐츠를 게시하는 장이 되는 동시에 타인의 콘텐츠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의 미디어 교육학자 M. 루블라와 G. 베일리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과 그것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아는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는 “발견, 평가, 창조, 소통을 위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는 능력으로, 인지적, 기술적 능력을 요구한다.”라고 정의한다.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정보와 지식이 모두 공짜인데 나이 든 사람들은 점점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이 든 사람들이 디지털 문화에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의 갭을 좁히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디지털 세계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때에 찾아 쓸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인의 인문학 학습은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마음과 유연한 사고를 길러줄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의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발전과정을 보고한다고 시작한 글이 성인, 특히 나이 든 세대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요즘은 나의 생각이 모조리 기승전독서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