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랑을 의심했다

드라마 <인간실격>을 보고

by 이소라

전도연 주연의 드라마 <인간 실격>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고 배경 음악이 인물과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해주어서 볼 때마다 몰입하게 된다.

어제 회차에서는 전도연과 그녀의 남편이 각각 다른 남자와 여자에게 끌리는 상황이 많이 진행되어서 극적 긴장감이 높아진 시점이었다. 이때 전도연의 아버지가 치매 증상으로 길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까지 실려 가는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의 연인 후보자와 함께 있던 전도연과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에게 달려오고 아버지는 위급한 순간을 넘긴다.

이 과정에서 전도연과 그녀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좀 더 깊이 다루어진다. 아버지는 싱글 대디로 전도연을 키워온 것 같았다. 삶이 버거워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죽어버릴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시장에서 파는 빵을 보고 “아빠, 돈 많이 벌면 나 저거 사줘.”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전도연과 아버지의 관계가 그처럼 애틋했던 이유를 알게 되니 마음이 아렸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박인환은 몇 마디 대사와 얼굴 표정만으로도 인생의 굴곡과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대단한 배우이다. 그에게서 자꾸만 내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 피부가 두개골에 달라붙어 뼈 그림자가 생기는 노인 특유의 얼굴, 정신이 나간 순간의 무표정함, 정신이 돌아온 순간의 아이 같은 미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나의 아버지는 언제인가부터 아름다운 미소를 잃었고 웃어야 할 순간에도 어색한 찡그림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파킨슨의 증상인 것을 아빠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었다. 표정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도록 과잉 학습된 나는 아빠의 무관심한 표정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박인환은 다른 것은 잊어도 딸의 생일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도 딸과 사위의 이름은 기억해낸다. 그가 딸을 보고 “예쁘다!”라고 할 때 내 아버지의 시선을 볼 수 있었다. 박인환 배우가 우리 아빠를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마음이 우리 아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나를 평생 사랑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굴이 마비되어 웃는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도 아빠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내가 찾아가도 반가워하는 기색 없이 눈을 감아버릴 때, 그때도 아빠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를 사랑해주시던 아빠를 잃어버린 줄 알고 나는 그처럼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아빠의 사랑이 식은 것으로 생각하여 나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박인환의 얼굴과, 그의 눈에 비친 전도연의 예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울었다. 제대로 된 슬픔이 이제야 조금씩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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