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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Feb 23. 2023

노년의 꿈

인간극장 '66세 엄마는 도전 중'을 보고

    텔레비전에서 66세에 가수의 꿈을 펼쳐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매일 보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 노래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하는 등 소질을 보였고 스스로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내와 어머니로서 임무를 감당하느라 예순넷이 되어서야 가수로 데뷔하고 자기 곡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늦게나마 가수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녀의 의지였다. 

    마흔 살 중후반의 두 딸은 엄마의 가장 훌륭한 지원병이 될 수도 있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딸들이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그녀는 외로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사십 년을 가족에게 헌신하고 이제야 자기 꿈을 찾아가는 엄마를 딸들은 낯선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귀향하여 아들과 함께 지내는 남편은 아내의 새 출발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반면, 딸들은 엄마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프로그램은 매시간 무명 가수로 소수의 청중을 만나는 그녀의 설렘과 흥분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기들에게 이전만큼 헌신하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 딸들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내가 그녀 허지윤 씨만큼 가족에게 헌신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갔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여가수와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이 좌절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녀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서른 살 이전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었고 마흔부터는 또 다른 꿈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 대 후반 음대에 편입하여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어서 한없이 행복했지만, 아직 어렸던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유년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나 자신도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아이의 부적응은 나에게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해주었다. 마흔에 시작한 심리학 공부로 학위를 따고 상담실을 열게 되면서, 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나 자신의 커리어를 만든 좋은 사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오십에 중병을 얻으면서 나의 커리어는 중단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의 성취욕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나는 단지 생존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얻은 학위를 활용하여 강의와 심리상담을 재개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사십 고개를 넘을 때, 그리고 오십 고개를 넘을 때와는 몸도 마음도 딴판이었다. 나는 노년기로 돌입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을 그만두고 은퇴할 나이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나이 때문에 은퇴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전처럼 일을 계속하기도 어려웠다. 그 와중에 친정아버지의 병환으로 장녀인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때 강한 글쓰기 욕구가 발동했고, 곧이어 글을 쓸 기회가 찾아왔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 배설 같은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쓰는 것만으로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리고 쓴 글을 읽어보면서 매일 직면하는 사건들을 해석하고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내 부모를 감당해나갔다. 3년이 지나니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만 남았다. 아버지와 금슬이 좋았던 엄마가 내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서기 할 수 있게 하려고 나는 냉정한 딸이 되었다. 엄마는 홀로서기 할 필요가 있었고 나의 삶은 복구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글쓰기가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가시고 코로나 대유행도 점차 잠잠해진 지금, 글쓰기와 독서, 독서 모임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 있다. 여전히 심리상담실을 열어 두었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독서와 글쓰기로 바뀌었다. 내담자들에게도 치유 도구로서 독서와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66세 여가수는 노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노래를 하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나도 말한다. “글을 쓰면 가슴이 트여요!” 

노래를 하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여가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흥겨워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앞으로의 바람은 더 많은 청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노래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측면을 다 가지고 있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순전히 이타적인 꿈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자기 스스로 그 유용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남에게 권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얻은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심리상담가와 작가, 글쓰기 교사가 된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 일을 잘할 때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누가 뭐래도 그녀 허지윤 씨처럼 나도 내가 선택한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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