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19

또 한 번의 임종 해프닝

by 이소라

작년 11월 말에 임종 해프닝이 있었고 오늘 또 한 번 있었으니 두 달 만이다. 죽음의 시간이 코앞에 와 있다는 아빠의 확신을 반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는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나?”라고 자주 묻는데 그럴 땐 하도 기가 막혀서 숨을 안 쉬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 하지만 아빠는 이해를 못하신다.

오늘 119를 부른 것은 엄마 입장에서는 면밀히 계산된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찰밥에다 김에다 먹다 남은 케이크까지 가져 왔겠는가. 점심을 싸왔다는 엄마의 말에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펼친 도시락은 그렇게 화려했다. 아침에 119 대원들에게 베드를 접어라, 펴라 지시하는 엄마를 보면서 참 많이도 해보셨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아빠가 누워계시던 자리를 정돈하고 엄마는 그렇게 유유히 앰뷸런스에 올랐다.


원래 오늘은 신경과 외래 진료가 예약되어 있는 날이었다. 아빠가 도저히 내 차까지 걸어가지 못하겠다며 응급차를 부르겠다고 하시는 것을 계속 말렸지만 팔 아픈 엄마와 허리 아픈 내가 아빠를 휠체어에 앉히는 일만도 어려운 일 같기는 했다. 아빠는 운반용 들것에서 응급실 베드로 옮겨지는 동안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가 싶기도 하다. 식사를 거부한다는 말을 듣고 당직의사는 MRI 검사 처방을 내렸다. 임종이 가까워질 때 식사를 못하는 이유가 뇌의 문제 때문일 수 있는가 보다. 그러나 뇌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재작년 가을부터 이 병원에서 MRI 찍은 횟수가 5번은 되는 것 같다. 뇌 영상은 늘 정상이었고 허리뼈에 실금이 갔다는 진단만 한 번 있었다.


내과적인 문제도 없고 내일부터는 연휴라 입원이 어렵다고 응급실 의사가 말했다. 엄마는 일찌감치 간호사들에게 2인실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에 한 번 베드 하나가 비어 있는 2인실에 아빠가 입원하셨을 때 엄마가 그 빈 베드에서 주무시면서 편하게 간병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또 그런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기대하시는 것일까.

요양병원으로 가자고 했더니 집에 가서 영양보충이라도 시키고 가야지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요양병원에 가느냐고 한다. 식사도 잘 안 하시는 아빠에게 얼마나 영양을 보충하겠다는 것인지... 어제 손녀가 굴비를 보내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자기 혼자 먹느냐고 한다. 요리해서 갖다 드리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나는 싫다, 아빠를 요양병원에는 보내지 않을래, 내 마음이 불편해” 한다.

엄마 몸이 편하시라고 요양병원을 권하는 건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재작년 대전으로 이사하신 후 보훈병원과 개인 정형외과 의원 말고도 요양병원에만 두 번 입원하셨었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아빠가 간병인을 싫어하고 엄마만 찾아서 퇴원을 시켰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처음보다는 잘 적응하시고 엄마를 별로 찾지도 않았는데 기어이 엄마가 아빠를 부추겼다. 병원에 가시지 말라고 해도 매일 가시면서 갈 때마다 “당신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죠?” 하는 식으로 유도신문을 했다. 아빠 입에서 “응”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빠가 얼마나 집에 가고 싶겠느냐고 아빠를 끔찍이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오기 힘들어서 그랬던 거다. 집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니 엄마 혼자 버스를 타고 오면 한 시간이 넘는다.


엄마가 마음을 정하면 다시 생각해 볼 여지 따위는 없다.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건하게 반대를 해도 섭섭해하시거나 아니면 “아빠를 위해 최선을 다 해볼래!”하며 큰 소리를 치신다. 그래야 후회가 없겠다는 것이다. 집에 가면 “세상에 집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 병원에서 해 주는 게 뭐가 있느냐?”하며 집에 온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랑을 하신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아빠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자는 사람 깨워서 약 한 번 먹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기저귀 가는 게 너무 힘들다, 이런 말을 하신다. 병원에서는 간병인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해 주었는데 엄마는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실까.


응급실에 입원해 있는 한은 외래의 약 처방이 안 된다고 하여 원래 오늘 예약되었던 외래진료를 못 받았다. 그래서 퇴원 처리를 하고 다시 원무과에 접수했다. 그동안 정신과에는 엄마가 와서 약만 처방해갔지만 오늘은 반드시 환자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응급실 베드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히려는데 아빠는 “못 움직여” 하셨다. 간호조무사들은 그 말을 곧이 듣고 주춤했지만 나는 “그래도 한 번 해보세요, 우리가 잡아드릴게요.”하고 아빠의 상체를 잡아드렸다. 남자 조무사 두 사람의 힘이 보태어지니 거뜬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빠는 멀쩡히 휠체어를 타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드셨다.

엄마도 요즘 어깨가 안 좋았기 때문에 병원 온 김에 정형외과 진료를 받고 나오시더니 수술이 가능하겠다는 말을 듣고 한껏 들뜨셨다. 생각보다 골다공증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병원 의사가 수술을 잘한다는 간호사들의 말에 고무된 엄마는 아빠까지 수술시킬 생각을 하고는 어느새 아빠를 정형외과 외래에 접수했다. 오후 3시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신탄진까지 한 번 오기가 힘든데 온 김에 골다공증 검사를 받고 아빠도 수술받게 하자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이 병원에서 허리 MRI 찍은 것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아빠는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허리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허리만 안 아프면 살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보훈병원에서도 정형외과 진료를 많이 받았었는데 엄마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빠도 수술이 가능하다면 의사가 수술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아빠는 수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찾아낸 희망에 취하여 잠시 떠벌이다가 내가 아빠의 허리 MRI 찍었던 이야기를 하자 그 말은 쑥 들어갔다. 그동안 아빠의 행적을 기록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뒤가 안 맞는 부모님의 이야길 듣고 있으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내 기억에 의지해서만 항변하기에는 언제나 말이 딸렸었다.


내가 요양병원 얘기를 꺼낸 것은 엄마가 수술을 하게 되면 어차피 아빠를 돌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팔도 들어 올릴 수 없고 다리는 힘이 안 주어져서 건들건들 걸으면서도 엄마는 아빠와 연휴 4일을 버틸 수 있다고 큰소리다. 나의 반대에 대해 결국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로 못을 박아버린다. 나는 그 말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래요, 엄마가 알아서 하세요.”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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