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하다

한 달 간의 자가 치유 프로젝트

by 이소라

나의 귀가 불안증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빠의 불평과 망상이 내 속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엄마의 호출이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치료가 필요했다. 나는 글쓰기를 치료의 수단으로 선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 책 읽기는 손쉬운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곤 했다. 몸은 이 세상에 있으나 동시에 다른 세상에 가 있게 해 주는 것이 책이었다. 책과 벗 삼고 사는 사람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라 얼마 전부터 내 속에서 쓰기에 대한 갈망이 자라고 있었다. 읽기가 쌓기라면 쓰기는 허물기다. 읽기가 흡입이라면 쓰기는 배출이다. 지금은 쌓기보다는 허물 때, 흡입하기보다는 배출할 때인 것 같았다.

매일같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아빠의 요구와 엄마의 필요에 따라 나의 자아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의 시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어렸을 때 그랬듯 내 삶은 부모가 연출하는 연극으로 상연되다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가까이에 사는 둘째 딸이 아기를 낳으면서 친정 아빠에 대한 의무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 노릇 하느라 바쁘니 딸 노릇은 조금 소홀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딸과 손녀의 요구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집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남편과 막내가 있었다. 한 가지 의무에서 다른 의무로 피해 다니는 것은 별로 좋은 탈출구가 아니었다.

KakaoTalk_20210402_135849204.jpg 국민연금공단의 작가탄생 프로젝트 출간기념회

글쓰기는 내게 구원처럼 왔다. 나는 SNS에서 글쓰기에 대한 정보를 접할 때마다 따로 메모해 놓곤 했는데 어느 날 검색을 하다가 ‘모든 국민은 작가다’라는 제목에 강하게 끌렸다. 국민연금공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었다. 장소가 서울이라서 갈 수 있을까 하면서도 짧은 나들이가 나의 작은 일탈 욕구를 만족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장소인 헌책방 ‘서울책보고’도 궁금했다.

강의는 내게 생각보다 큰 자극이 되었다. 이날은 작가 탄생 프로그램 4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출간기념회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한 달 동안 책 한 권씩을 써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작가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문득 내가 책을 쓴다면 어떤 제목으로 쓰면 좋을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버지, 그렇다 나의 아버지에 대해 쓰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진실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이 글쓰기는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내가 도망가고 싶어 하는 지금의 이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가장 피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님 때문에 생기는 복잡한 감정에 직면하는 것은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7월에 전주에서 작가 탄생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소식도 반가웠다. 대전에서 전주까지는 서울 가는 거리의 반밖에 안 된다. 더운 여름 동안이지만 글쓰기에 빠지면 더위를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전주에 가기 전부터 내 책의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다.


글쓰기와 자기 치유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하면 당연히 자기 치유가 더 중요했다. 글쓰기는 치유를 위한 수단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악기로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악기가 작동하는 원리를 익혀야 하듯 글쓰기가 치유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글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도서관에 가면 글쓰기를 주제로 쓴 책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쓰는 그들만의 방식 같은 것을 알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지만, 또 어떤 책을 읽으면 그 문장력이나 에피소드 서술방식에 압도되어 기가 팍 죽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마음속에서만 맴돌 뿐 무엇인가가 방아쇠를 당겨주기 전에는 좀처럼 글이 되어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작가 탄생 프로젝트가 바로 그 무엇이 되어주었다. 기한과 분량이 주어지니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금껏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육상선수처럼.

부끄러움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 가족사를 까발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가족이나 지인들이 알면 뭐라고 할지 두려웠다. 이것이 무슨 자랑할 일이라고. 그러나 자랑할 일이 아니니까 공개할 가치가 있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자랑스러운 성공담을 내놓을 때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서문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일은 진을 빼는 일이었으며 그래서 자기에게는 위안이 필요하다고 썼다. 작가의 그 말이 갑자기 나에게 위로로 다가었다. 박완서 같은 대작가도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쓰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어쩌면 내 글을 읽고 위안을 얻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계속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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