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시작(2)

아빠의 병원 순례

by 이소라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므로 주간보호센터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셨으나 이내 다시 불평이 시작되었다. 날이 좀 풀리면 다른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기로 하고 집에 계시기로 했다. 집에 계신 아빠는 예상했던 대로 운동도 안 하고 누워서 잠만 주무셨다. 아빠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졌다. 아빠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망진단서를 누가 써 주느냐와 장례식 준비를 어떻게 할 거냐 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아빠는 또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셨다. 파킨슨병의 증상인 장운동 저하로 인한 변비를 계속 다리 마비와 연관을 시키셨다. 다리가 마비되면 그것이 위장을 거쳐 심장까지 전이될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장에 변이 꽉 차 있다면서 며칠 동안 식사를 거부하셨다. 그러다가 기운이 빠지면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여 두 달 만에 다시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치료가 필요한 문제는 변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몇일 후 다시 퇴원했다.


수차례의 관장과 제산제의 도움으로 숙변이 빠져나가고 심한 변비는 해결된 것 같았는데 이제는 매일 허리 아픈 것을 호소하신다. 급기야 집에서 넘어지기까지 하셔서 또다시 119를 불렀다. 다시 찾아간 보훈병원 정형외과에서 찍은 MRI 소견은 요추에 실금이 갔다는 것이었다. 연수차 자리를 비운 의사를 기다리느라 일주일을 허비하고 받은 검사 결과가 그러했으니 참으로 허망했다.

이번에는 공동간병 병실에 자리가 있어서 거기 들어갔다. 아빠는 엄마 없이 주무시는 것이 불안한지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데다 간병인이 마음대로 소변줄을 꽂고 팔다리를 묶었다고 욕설을 하는 바람에 그 방에서 쫓겨나셨다. 새로 옮겨간 병실에서도 의료진을 계속 불러대며 호통을 치셨다. 칠순의 삼촌이 간병을 하러 와주셨지만 엄마 없는 밤에는 아빠의 잠꼬대와 망상이 유독 심했기 때문에 삼촌이라도 아빠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제는 엄마도 나도 지쳐서 집에서 아빠를 돌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의사의 허락을 받고 도망치듯 퇴원하였다. 결국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었지만 치료라고 할 만 것은 받지 못했다. 보훈병원의 무성의에 화가 나고 줄곧 보훈병원만 고집하는 부모님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만 찾는 아빠가 밉고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엄마도 미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병원에서 그런 소동을 벌인 걸 다 잊으셨는지 아빠는 또 엄마를 들볶기 시작했다. 엄살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한 아빠의 투정을 날마다 받아내야 하는 엄마도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아빠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옆구리에 있는 장기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시작하셨다. 아빠는 콩팥을 찾아내셨다. 콩팥이 아프다는 것이다. 콩팥에 이상이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는 아빠를 달래다 못한 엄마는 나를 부르셨다. 어느 병원이든 가서 콩팥 초음파 사진 좀 한 번 찍어 드리자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월요일 아침, 신장 초음파 찍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예상대로 콩팥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 병원 의사는 본인의 장모도 허리에 실금이 갔는데 시멘트 시술을 받고 깨끗이 나았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가 추천한 정형외과 의원으로 직행하여 의사와 면담을 하였다. 놀랍게도 그날 오후에 시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빠는 당신을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만족해하시기 때문에 그날 오후에는 모두가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


시술을 하고 난 후에는 그동안의 고생이 다 날아가고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통증이 없어지자마자 아빠는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하시더니 엄마와 함께 여행하겠다고 크루즈 상품을 찾아보셨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보행연습을 한다고 일어났다가 또 넘어지신 것이다. 시술 당일부터 보행연습을 해도 된다고 말한 것은 의사의 실수였다. 엄마가 아빠 신발을 찾는 사이 아빠가 벌떡 일어났는데 바퀴 달린 보행보조기의 브레이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는 보행보조기 손잡이를 잡고 쭉 미끄러지셨다.


엄마는 여든넷이라는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하시다. 지금까지 아빠가 입원할 때는 늘 엄마가 간병을 하셨다. 엄마는 보호자 침대에서 자는 것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고 하시고 아빠도 엄마만 찾기 때문에 삼촌이 교대해 주시는 날 외에는 늘 엄마가 아빠 옆에 있었다. 아빠가 보행보조기를 잡고 미끄러진 다음날 아침 엄마가 소화제를 받으러 간 사이에 아빠는 또 넘어지셨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팔십대의 아내에게 맡기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지만 우리 집에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유별나게 엄마만 좋아하는 아빠를 다른 사람이 돌볼 수가 없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다고 늘 큰소리치던 엄마도 이제는 자신이 없어졌는지 간병인을 구해달라고 하셨다. 더 이상의 낙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판단하신 것이다. 병원에서 소개한 간병인이 와서 엄마는 간신히 집에 가서 하루 밤 숙면을 취하셨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아빠는 엄마를 불러서 자기 눈을 감겨달라고 하셨다. 당신을 보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시면서.


우리는 집에서 비슷한 장면을 많이 보았건만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간병인도 놀라고 의사도 놀랐다. 의사는 아빠를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하였다. 정말로 곧 운명하시는 걸로 생각한 것인지 치매환자가 자기 병원에서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두려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직장에 있는 남편을 급히 불러 어느 병원으로 옮길지 상의한 후 남편 친구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겼다. 5명의 의사가 돌아가며 병실에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자 아빠는 다시 기분이 좋아지셨다. 정형외과에서부터 따라온 간병인에게 아빠를 맡기고 엄마와 나는 다시 집으로 갔다. 이 병원에서는 재활치료도 해준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다음날 간병인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재활치료에 한 번 다녀온 후 두 번 다시 이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갔더니 다시 간병인에 대한 불평이 시작되었다. 먹기 싫다는 밥을 자기에게 억지로 먹인다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들-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을 대면서. 아빠의 불평을 계속 듣고 있으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어떤 요양병원에서는 입소 후 한두 주 동안은 가족들의 면회를 제한한다던데 이래서인가 보다. 우리는 또 아빠에게 졌다. 미국의 남동생이 일주일 휴가를 내어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아빠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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