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시작(1)

귀가 불안증이 시작되다

by 이소라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전업주부인 나에게 집은 곧 직장이나 마찬가지이니 귀가가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 그날은 유난히 집에 가기가 싫었다. 멍하니 카페에 앉아서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엄마의 전화를 받기 싫은 거였다.


반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작년 가을에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신 친정 부모님은 최대한 나의 사생활을 존중하려고 노력하신다. 그래서 일반전화나 휴대폰 대신 아파트 단지 내에 가설된 인터폰만 이용하신다. 내가 외출한 시간에는 나를 찾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터폰을 받으면 “지금 뭐 하노”로 시작해서 “밥 먹으러 와라, 뭘 좀 가져가라, 뭘 좀 갖다 다오, 핸드폰이 먹통이다, 가스불이 안 켜진다.” 같은 레파토리를 듣는다.


타지로 이사한 후의 적응은 젊은 사람에게도 만만한 일이 아니니 노인들에겐 오죽할까. 그러니 두 분이 새 주거지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부모님 댁을 찾아 불편한 것을 살펴드렸다. 부모님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셨다. 손녀와 강아지는 노인들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니까. 외식도 자주 시켜드리고 목욕탕, 미장원, 병원, 약국, 슈퍼마켓, 주민자치센터 등에 모시고 다녔다. 부모님이 집안의 최고 어른이다 보니 손님도 많이 왔다. 서울과 경기도, 천안에 사는 친척들이 차례로 방문했다. 대전에 사시는 부모님의 친구들과 나의 시어머니도 다녀가셨다. 나는 손님들이 올 때마다 인사드리러 갔다.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사 오시기 전부터 물색해 놓은 시설 좋은 곳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처음 등원하는 날 눈물을 찔끔거리며 이별 의식 비슷한 걸 하였다. 당신을 혼자 그런 곳에 보내다니 정말 미안하다며. 엄마와 아빠는 자타공인 잉꼬부부이다. 엄마도 같이 다니게 해 줄 수 없겠냐고 하는 아빠를 달래며 엄마는 매일 등원차량을 배웅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센터에서 생활하시는 아빠는 밤에 잠도 잘 주무셨다.


부모님의 대전생활은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엄마도 잠깐 분리불안을 겪는 것 같았지만 금방 적응하셨다. 엄마가 적적하실까 봐 걱정이 된 나는 보건소에서 하는 치매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찾아서 엄마와 함께 다녔다. 엄마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아빠가 치매 판정을 받고 정신없는 소리를 자주 하시면서 엄마는 신세한탄에 빠질 때가 많았었다. 다른 치매가족을 만나면 공감대 형성이 되어서 좋을 것 같았다. 다녀보니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의 가족 중에서 우리 아빠 상태가 제일 양호한 것 같았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치매 걸린 남편과 아내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의 남편이 그나마 건강한 것을 확인하고 위로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이해, 치매환자를 대하는 방법, 가족 자신의 건강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 대한 동기부여 등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엄마가 이 모임에서 친구를 만들고 정을 붙여 나 없이도 모임에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속 모시고 다녔다.


그러나 엄마와 내가 보건소의 가족교육을 아직 수료하기도 전에 아빠는 주간보호센터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반찬이 맛 없고 간식이 성의 없다, 노인네들이 서로 욕 하고 싸운다, 일정 후 귀가 차량 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다, 차량 탑승 시간이 길어서 다리가 저리다 등의 불평을 거의 매일 하셨다.


어느 날은 아직 귀가시간이 안되었는데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복통과 다리 마비를 호소하니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는 것이다. 국가유공자인 아빠의 주치 병원을 신탄진 보훈병원으로 이관한 상태라 그곳으로 갔다. X-레이와 CT, MRI까지 다 찍었지만 결과는 이상무였다. 혈액과 소변검사 결과도 정상이었지만 불안해하는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며칠 입원해 있으면서 마비 중상이 재발하는지 보기로 했다. 재발은 없었고 아빠는 일주일 만에 퇴원하셨다. 서울에 살 때 툭하면 입원하셨던 적십자병원과 달리 보훈병원은 장기입원환자들의 텃세가 심했기 때문이다. 퇴원하며 아빠는 지옥이 따로 없다, 집이 천국이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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