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절교 선언 비슷한 것을 하고 난 직후에는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지인은 의무방어만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 선물 정도는 해야겠지’라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귀국하여 난리 부르스를 추다 잠시 잠잠해진 사이, 나는 꽃과 화장품, 아빠의 티셔츠를 사 가지고 친정에 갔다. 엄마는 무안한지 화장품은 왜 사 왔냐며 재난지원금이 나오면 사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말도 마음에 안 들었다. 국가에서 재난 지원금 정책을 논의할 때는 나라 망한다고 욕을 하더니만 돈을 준다니까 꼭꼭 받아 챙기려나 보다. 지원금 받으면 쌀 사시라고 대답하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어버이날 선물을 사 왔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엄마의 말끝에 동생이 힘들어서 더는 못 있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바꾸라고 해서 알아들게 말을 했으나 동생은 누나도 자기 입장이 좀 되어보라는 말로 나를 폭발하게 했다. “지금까지 네 입장을 이해하니까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준거다! 그러는 너는 남의 입장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니?”
그렇게 세게 말해도 자긴 죽을 것 같다며 징징댔다. 그래서 나는 너 같은 인간이 살아서 뭐 할 거냐며 당장 죽으라고 했다. 2주간도 혼자 있지 못하는 인간이 살 가치가 있냐고 했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손 놓고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외로움 따위를 견디지 못하는 네가 인간이냐고 했다. 자기가 한국에 왜 왔는지도 모르는 인간,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자.
내 입에서 그런 험한 말이 나오는데도 엄마가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이 낯설었다. 나는 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내 모습에 나 자신도 놀랐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내게 백범 김구 선생의 혼이 깃들어있는 것 같았다. 전날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이 백범일지였다. 백범의 기개와 결단력, 그리고 백범을 돕는 사람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 여운이 남아있던 터라 외로움 따위를 들먹이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로 보였다. 백범에게 큰 존경심을 품고 찾아왔던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백범의 지시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의거를 했던 그 마음이 나에게도 빙의된 같았다. 뜻을 품은 남아들에게 자기 목숨 따위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런 기개가 왜 우리 식구들에겐 없는 것일까? 왜 지금의 우리나라엔 없는 것일까?
지금의 내 동생은 나약함의 아이콘이지만 어렸을 때는 고집이 세서 부모님과 기싸움을 많이 했다. 호랑이 같은 우리 엄마도 동생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동생은 재능도 많고 욕심도 많았다. 심지어 점 10원짜리 화투에도 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동생의 욕심과 고집을 귀엽게만 보았는데 성장해서도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니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안 되고 자기 병원의 간호사나 환자들과도 늘 트러블이 있었다.
대놓고 못되게 행동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억누르고 좋은 사람인 체 하는 것이 문제였다. 필요 이상의 친절과 호의를 베푸니 사람들은 동생을 만만하게 보기 일쑤였다. 제멋대로 행동하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가면을 쓰고 살기로 한 것 같았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겉으로만 친절하게 해 주면 남들이 좋아한다는 잘못된 처세술을 배운 것 같았다. 끝까지 가면을 쓸 수만 있으면 다행이련만 동생은 가면 뒤에 오래 숨어 있지 못했다. 본성이 드러나서 섭섭해하고 화를 내고 판을 뒤집어버렸다. 감정을 드러낸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병원 문을 닫고 남의 병원에서 월급 의사로 일하다가 또 병원을 새로 개업하곤 했다.
집에 와 있는데 동생이 온순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한국의 격리정책이 이렇게 철저한지 모르고 들어와서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는 것이다. 한 주가 지났으니 그 당혹감이 진정되고도 남았을 시간이건만 동생은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 받아주었다. “너 공황장애 아닐까?” 했더니 그게 뭐냐며 솔깃해했다. 너무 불안해서 숨도 안 쉬어질 정도로 무서움을 느끼는 병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딱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도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의학적인 것으로 보니 자존심이 세워지는 모양이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전직 치과의사가 공황장애를 모른다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네가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다.” 하며 달랬다. 격리 해제되면 나랑 같이 정신과에 가보자고 했더니 직전의 내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순순히 가겠다고 했다.
자기 성격에 문제가 많다며 나에게 상담을 좀 해달라고 해서 해주는 건 좋은 데 첫째, 네가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전화하면 안 되고 둘째, 싫은 소리 듣는 것 각오하면 해주겠다고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은 검사를 다시 하기 위해 보건소에 다녀왔더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일주일만 더 버티면 되니까 잘 견뎌보자고 했더니 자기는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지 일주일 뒤를 기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욕이라도 할 줄 알면 실컷 해주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