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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 Dec 27. 2020

6. 애도의 불협화음

우리의 슬픔은 다를 수밖에

엄마와 나는 손발이 잘 맞는 한 팀이었다.

나는 엄마와 닮은 곳이 없다. 그에게서 나고 자랐는데도 외모와 성격 모두 신기할 정도로 정 반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팀이 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이 앞에 놓였을 때 각자가 더 적합한 일을 처리하면 되니까.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우리는 아빠와 관련된 일들을 철저히 분업화했다. 행정적인 처리나 꼼꼼한 확인이 필요한 일은 내가, 긴 시간이나 원거리 이동이 필요한 일은 엄마가 하는 식으로.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 분업은 더욱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어떨 땐 엄마와 내가 아주 잘 훈련된 대응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적게 당황하는 것이었다. 아빠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점점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 업무 분장이 이루어졌다. 그 순간이 찾아오면 장례식장에 전화하는 것은 내가 하기로 했다. 영정사진이나 기타 필요한 것은 본가에 두었다가 엄마가 가지러 다녀온다. 나는 그 사이에 친척들과 엄마 아빠의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린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정말 정해진대로 했다.

이렇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주 잘 유지해온 우리의 팀워크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깨져버렸다. 아빠를 떠나보낸 뒤 엄마와 나의 대응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다 꺼내 들여다보며 슬퍼하기보다는 그냥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아빠 이야기를 들어서 슬퍼졌고 엄마는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내가 야속해서 슬퍼졌다.


아빠가 남기고 간 것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어서도 우리는 부딪쳤다. 나는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관련된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장례식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 오늘 옷장 정리했어. 아빠 물건도 전부 정리했어.


나는 너무 놀라서 전화를 걸었다.  정리했다고? 내가 아빠한테 사준  스웨터도 버렸어?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말을 들은 순간 너무 화가 났다. 화를 참느라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빠에게 버건디색 스웨터를 선물한 적이 있다. 아빠에겐  색이 정말  어울렸다.  스웨터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빠는 나와 어딘가를  때면 일부러  옷을 자주 꺼내 입었다. 유품으로  스웨터를 간직하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어떻게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몇 개월 후, 엄마는 이사를 했다. 나에겐 이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나는 당분간 본가가 그대로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본가에 들어가지도 않는 주제에 그런 주장을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이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집이 아니라 부모님의 집이기도 했고.


엄마가 이사 가는 날엔 연차를 냈다. 새 집은 신도시에 있었고 그곳은 아주 쾌적했지만 본가가 있던 오래된 동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빠라면 절대 이런 동네를 고르지 않았을 텐데. 이사를 도우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빈 냉장고를 채우러 가까운 백화점에 갔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백화점 역시 너무나도 쾌적한 곳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게 어딘가 아니꼬워서 견질 수 없었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 저녁을 먹은 뒤 엄마와 헤어졌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 백화점 1층으로 올라가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본가가 있던 동네가 이제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 슬펐다. 영영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일련의 '애도의 불협화음'들을 겪고 난 뒤 엄마를 조금 원망하게 되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가 새 집과 새 동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솔직히 싫었다. 하지만 마음이 어떻든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가끔 엄마를 찾아가야 했다. 한참을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쯤 엄마 집으로 향했다. 그게 올해 9월이었다.


그 날 내 가방 안에는 조앤 디디온의 <상실>이 들어있었다. 대강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읽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마음먹고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빌려온 후에도 페이지를 펼칠 엄두가 안 나서 가지고만 있었다. 시간은 가고 반납일이 가까워졌다. 어차피 엄마 집에서는 잠도 안 올 것 같아서 출근길에 들고 나왔다.


엄마의 새 집은 호숫가에 있었다. 신도시답게 호수 주변에는 주상복합단지나 쇼핑몰 같은 것들이 화려한 조명을 밝힌 채 늘어서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자게 될 방에는 아직 커튼이 달려있지 않았다. 바깥 건물들이 너무 반짝거려서 밤인데도 방 안이 환했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잠시 서서 한쪽 벽에 서 있는 아주 익숙한 책장을 바라보았다. 본가에서 쓰던 내 책장이었다. 책장도 나처럼 그 방에서 아주 어색해 보였다. 책장과 창문 사이 빈 틈에 끼어들 듯 앉아 <상실>을 읽기 시작했다.


<상실>의 원제는 <The Year of Magical Thinking (마술적 사유의 해)>이다. 조앤 디디온의 남편인 존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죽게 된다. 조앤 디디온은 매우 침착하게 장례를 치루지만 그 후 ‘알맞은 상황이 되면 그가 돌아올 것’ 이기 때문에, 그가 돌아오면 신을 구두가 남아있어야 한다는 식의 비논리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마술적 사유의 해’란 떠나간 버린 사람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 환상 같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모든 것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 볼 수밖에 없었던 한 해를 말하는 것이었다.  


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이렇게까지 우아한 문장을 쓸 수 있다니. ‘2020년 읽은 아름다운 책 베스트 5’ 안에 꼽히고도 남을 정도였다. 너무 좋았어서 조앤 디디온의 다른 책을 영문판으로 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나중 일이고, 그날 밤 그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상실>을 읽어 내려갈수록 나는 엄마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아빠의 물건을 모조리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도망치듯 빨리 이사할 수밖에 없었는지.

지나가는 듯한 말로 엄마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아빠와 아직도 같이 사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면 그냥 거기 있을 것 같애. 매일 앉아있던 소파에서, 식탁 맞은편 자리에서, 혹은 그 밖의 모든 곳에서 엄마는 아빠를 보았을 것이고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의 애도가 나의 것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의 슬픔은 아빠를 잃은 사람의 슬픔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사람의 슬픔이니까.

두 사람은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나누었을 것이고, 나는 단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보낸 두 사람의 순간들, 그러니까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젊은 아빠의 뒷모습이나 신혼 시절 엄마에게 자주 불러주었던 노래 같은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장면에 내가 함께 있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혼기념일마다 아빠가 사 오던 커다란 꽃다발을 받아 들 때 엄마의 미소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몇십 년 간 꽃다발을 사주던 사람이 사라졌을 때 느꼈을 엄마의 상실감이 어떤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책을 덮으며 나는 엄마의 애도를 존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방법이 나와는 조금 다르다 해도. 엄마의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는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뿐인 것 같았다.


이 이야기가 ‘그 후로 나는 엄마를 자주 찾아가는 착한 딸이 되었다’로 끝나면 좋으련만 여전히 나는 엄마와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엄마가 전혀 원망스럽지 않다. 엄마의 새 집이나 근처 백화점을 아니꼬워하는 것도 그만뒀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엄마의 애도 과정을 함께 해주지 못했단 죄책감이나 우리의 슬픔이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쓸쓸함이 있는 것 같다. 엄마를 만난 날에는 꼭 악몽을 꾼다(나는 원래 꿈을 잘 꾼다). 줄거리는 비슷하다. 어딘가에서 엄마를 구해내지 못하는 이야기.

 

가장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난 날엔 지구가 멸망하는데 엄마만 남기고 혼자 탈출하는 꿈을 꿨다. 끔찍한 기분으로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가닥뿐인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이야기까지는 하기 좀 그래서 방금 나쁜 꿈을 꿨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꿈이었다고 말했다.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정말 멸망한 게 아니라서.

 

나는 그렇게 말해주는 목소리마저 혹시 꿈일까 불안해서 조금 울 것 같았다.




사실 엄마 집에 다녀오던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상실>을 한번 더 읽었다.  위 사진은 그 때 좋았던 페이지를 찍어뒀던 것이다.


<상실>을 읽다 보니 나에게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몇 년 동안 느낀 것들을 어떻게든 정리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정리 방법은 일단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써본 후 늘어놓고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 며칠 안 남아서 잘 모르겠네.

다음번에는 꿈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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