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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Feb 17. 2024

뚜벅이의 출근길

  1월자로 부산으로 발령 받았다. 입사하기 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꼭 부산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주의 기운이 도왔는지 생각보다 일찍 부산으로 가게 됐다. 꿈꾸던 곳에서 일하게 돼 기뻤지만 이별은 늘 슬픈 법. 4년의 시간을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으리. 창원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창원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과 동료,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일터. 모두 쉽게 잊기 힘들겠지만 제일 잊기 힘든 걸 꼽으라고 하면 하루의 출발, 바로 출근길이다.     


 “어떻게 부산 창원을 시외버스타고 다녀요? 차라리 집을 구해요.”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정말 셀 수 없이. 회사 동료는 당연하고 모임에서 만난 사람, 택시 기사님 등등 내가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사실을 안 모든 이들이 그 질문을 했다. 그럼 한결같이 “집에서 터미널이랑 10분 정도 밖에 안 걸려요. 그래서 다닐 만 해요!”라며 당신들이 그렇게 말해도 난 끝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 할 거라는 의지를 담은 눈빛으로 답했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 길을 다녔는지 스스로가 장하다 싶다. 매일 아침 부랴부랴 터미널까지 뛰어다녔는데 걸어서 10분 거리를 뛰어서 7분까지 단축시켰다. 정말 빠듯할 때는 6분까지!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학창시절에는 달리기를 못해서 운동회가 그렇게 싫었는데 출근길에는 그 누구도 앞지르는 다리에 깜짝 놀랐다. 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동네 이모들도 감탄 아닌 감탄을 하셨다는 말을 어머니께 건너들은 적도 많다.      


  한번은 출근하면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는데 피가 바지에 흥건하게 묻어나왔지만 멈추면 지각이기에 아파할 틈도 없이 달렸다. 그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탓인지 상처는 지금도 훈장처럼 남아있다. 자기 전에 거의 매일같이 한 다짐이 있다. 내일은 5분 일찍 나와서 여유 있게 걸어야지. 이 다짐은 4년 동안 한 번도 실현하지 못했다. 겨우 시간을 맞춰 시외버스를 타면 버스 기사님, 또 나처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오늘도 보네요.’라는 눈인사를 나누고 40분 동안 숙면을 취했다.      


  창원으로 가는 길엔 변수가 잦았다. 어느 날은 신호가 잘 맞아떨어져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사갈 여유가 있었고, 어떤 날은 평소보다 20분 일찍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탔는데도 도로 위에 정체가 심해 택시를 타 기사님께 제발 시간 맞춰 가달라며 사정을 해 아찔하게 도착하기도 했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니 당연하게 오갔던 부산 창원 출퇴근길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은 도보 포함 출근 시간이 45분 정도 걸리는데 1시간 30분, 길게는 2시간 정도 소요된 시간을 어찌 거뜬하게 버텨낼 수 있었나 싶다. 왜 사람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이사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 해도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 할 것이다. 혼자 타지 생활을 감당해낼 경제적, 심적 여유가 없고 무엇보다 걸어 다니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사람과 세상 구경하는 게 재밌기 때문이다.      

  걸어 다녀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서 좋은 점은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도블록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민들레를 보면 봄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 수 있고 새파랗던 나뭇잎이 갈변하는 걸 보면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거리의 들꽃, 나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뚜벅이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하늘을 어떤 필터를 거치지 않고도 볼 수 있다는 것도 뚜벅이의 특권이다. 하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색감, 시간마다 달라지는 하늘색을 보며 감탄하고 휴대전화로 촬영해 간직하는 소소한 재미를 매일 누릴 수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지금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은 “차를 사는 게 어때요?”다. 질문인지 조언인지 알 수 없지만 무튼 이 말을 들으면 난 어김없이 “지하철 타고 다닐 만 해요.”라며 납득할 만한 이유가 생기지 않는 한 끝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닐 거야라는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답한다. 요즘은 같은 열차를 탄 사람을 살피는 재미에 빠져있다. ‘저 분도 늘 나처럼 급하게 지하철을 타구나, 오늘은 다른 겉옷을 입으셨네.’하며 사람 구경을 하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며 독서 목록에 추가하거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10분은 나만의 공연 시간이다. 아이돌 노래를 재생하고 마치 이 거리의 주인공은 나야! 라는 마음으로 립싱크를 하며 10분의 공연을 펼친다. 사람 구경도 해야 해, 들꽃과 하늘 사진도 찍어야 해, 공연도 해야 해.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제법 오랫동안은 뚜벅이로 살지 않을까 싶다. 타고난 뚜벅이인 건가. 뚜벅이에게 잔소리 대신 “무탈하게 잘 걸어 다녀.”라고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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