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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Mar 23. 2024

들이쉬고 내쉬고

초보 요기니 요가 일기_맛보기 편

“마시고 내쉬며,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요가원에 가면 매일 듣는 말이다. 온종일 숨을 쉬고 있어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지내는데 요가원에만 가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숨을 마시고 내쉬고 있구나. 숨을 마실 땐 갈비뼈가 팽창하고 내쉴 땐 복부가 납작해지고 갈비뼈도 수축되는 거구나. 요가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가면 나에게 숨이 붙어있음을,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요가원에 다닌 지 어느덧 5개월 차다. 처음 등록하러 요가원을 찾았을 때 “요가 배워본 적 있어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네. 유튜브로 일주일에 2번씩 해봤어요.”라며 제법 당당하게 답했다.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19로 헬스장이나 체육시설을 찾기 힘들었던 시기, 집에서 유튜브로 요가를 제법 열심히 따라 했기 때문이다. ‘피곤한 날 몸을 풀어주는 30분 요가’, ‘자기 전 하기 좋은 스트레칭 요가’처럼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10분 혹은 30분이라도 요가를 수련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영상 속 선생님을 따라 요가를 해왔기에 요가원에서도 중급 이상의 수강생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요가원에서 첫 수련 날, 첫 동작이 ‘다운 독’ 자세였다. 요가의 기본자세 중 하나인데 다리를 쭉 펴고 몸으로 산 모양을 만드는 자세다. 그동안 집에서 해왔듯 자신 있게 자세를 취했는데 선생님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소라 회원님, 잘하고 있어요. 팔을 조금만 더 뻗어볼까요?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등을 조금만 더 내려 봅시다. 좋아요. 숨을 마시고 내쉬세요.”라며 등을 나의 호흡에 맞춰 눌러주셨다. 내가 알던 ‘다운 독’이 다운 독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틈도 없이 선생님께서 등 부분을 누르는데 다리 뒤쪽 햄스트링이 찌릿찌릿 당겼다. 그런데 뭐야, 이 통증! 나쁘지 않아. 이러다 키가 0.5cm라도 자라는 거 아니야? 다리가 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던 등이 호흡에 맞춰 조금씩 내려갔다.     


다음 동작은 ‘코브라’ 자세였다. 척추를 곧추세운 뱀처럼, 하체는 매트에 고정시키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며 상체를 올리는 자세인데 어렵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따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자세는 선생님의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소라 회원님, 자세를 보니까 척추측만증 있을 것 같은데 맞죠? 척추측만증 있으면 이 자세 힘드니까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고개를 드세요.” 라며 맞춤형 지도를 해주셨다. 정해진 기준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몸 컨디션에 따라 하면 된다는 선생님의 지도가 좋았다. 들 수 있는 만큼의 고개를 들고 척추를 펴면서 동작을 따라 했더니 다음날 목 앞부분이 팽팽하게 펴진 것 같은 기분 좋은 통증이 찾아왔다.      


요가원을 다닐수록 요가원이 좋아진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수강생들과 같은 자세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수련하는 모습이 좋다. 운동에 자신이 없어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기피하던 내가 운동가는 날을 기다리게 됐다. 180도 다리를 뻗는 자세에서 처음엔 100도 정도에 그치던 나의 다리가 101도, 102도 5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은 110도 정도까지 뻗어진다.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복부와 팔에 미세하지만 조금씩 근육과 비슷한 형태가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아 어찌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러다 언젠가 근육이 있는 멋진 언니가 되는 거 아니야?라는 설렘을 안고 제법 성실하게 요가원에 다니는 중이다.     


요가원을 다니고 나서 홈 요가를 그만뒀느냐? 아니다. 요가원에 이틀 나가면 적어도 하루는 집에서 요가를 하려고 한다. 방에 매트를 펴두고 아로마 오일을 손목과 귀 옆에 바른 후 동영상을 따라 한 시간 시퀀스를 수련한다. 요가원을 다니기 전에는 자세 이해가 쉽지 않아서 영상을 멈추고 자세를 취한 후 다시 영상을 재생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세를 쉽게 취할 수 있어서 정지하지 않고 쭉 수련을 한다. 그러니 동영상 속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더 집중하게 됐고 어쩜 요가 선생님들은 이렇게 다 다정할까, 요가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이야. 라며 요가에 대한 애정을 두텁게 쌓는다.      


요가의 매력에 흠뻑 취한 사례 하나 더, 틈틈이 원정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나를 위한 이벤트로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가는데 부산 곳곳에 다양한 요가원이 있어 ‘요가원 도장 깨기’하는 재미에 빠졌다. 같은 자세도 선생님마다 설명하는 방법이 다르고 평소에 잘 되지 않던 자세가 원데이 클래스에서 될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최근에 간 해운대 원데이 클래스에서 일명 어깨서기, 위로 향하는 활 자세인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해냈다. 그동안 스스로 자세를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야 겨우 가능했고 자세를 잡아도 10초 이상은 버티지 못했다. “조금만 더. 좋아요.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좋아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세요.”라는 선생님의 말만 따라 했을 뿐인데 그 자세를 해냈다.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과 동시에 자세를 해낸 자신이 기특해서 눈물이 흐를 뻔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만 더. 괜찮아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세요.” 그동안 만난 나의 요가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다. 요가원에서, 동영상에서 자주 들어서일까. 이 말들이 요즘 나의 삶의 한 부분에 크게 차지하고 있다. 뭐든지 잘하고 싶은 나의 성격이 가끔 과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는데 요가를 시작한 이후 마음가짐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원하는 만큼 결과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예전엔 스스로를 탓하고 부족한 점을 찾기 바빴다. 요가를 시작한 이후 지금도 채찍질을 하긴 하지만 ‘그래, 괜찮아. 뭐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을 하려고 한다. 속이 상하거나 긴장이 될 땐 요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떠올리면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호흡으로 몸에 있는 좋지 않은 기운들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한 손은 가슴 위에 한 손은 배꼽 위에 두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세요.” 이 순간만큼은 몸에 누적되어 있던 부정적인 기운들이 밖으로 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잠깐이나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 순간을 자주 맞이하고 싶어서 아주 오랫동안 요가와 함께하는 삶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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