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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pr 28. 2024

눈 일대기

  초등학생 때 반에서 눈길이 가는 친구들은 다 안경을 썼다. 공부를 잘해 선생님께 이쁨받는 친구,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 목소리가 좋은 친구. 안경을 쓰면 친구들이 나도 멋지다고 생각하겠지? 하는 마음에 안경을 쓸 방법을 궁리했다.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른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을 실천하면 됐다. 안경이 탐 나서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보고 어지러움을 참고 친구 안경을 빌려 쓰고. 갖은 노력 끝에 열한 살에 안경의 세계로 입문하게 됐다.


  처음 안경을 손에 쥐게 됐을 때 진짜 언니가 된 느낌이 들었다.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수 있는 언니 말이다. 스케이트를 안전하게 타는 법, 피아노를 잘 치는 법, 정글짐을 쉽게 올라가는 법을 알려주면 동생들이 “소라 언니는 멋지니까 언니 말이 다 맞아.”라며 믿고 따르는 언니가 된 기분이었다. 기쁨을 누린 시간은 1년 남짓이었다.


  최고참 6학년이 되니 안경을 끼지 않은 언니가 예쁜 언니인 시대가 찾아와버렸다. 버디버디,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는데 사이트별로 얼짱이 있었다. 얼짱 대부분은 안경을 끼지 않거나, 알이 없는 안경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유행에 민감한 사춘기였기에 안경을 벗고 싶었지만 안경 없이 칠판의 글씨를 식별하기 힘들었다.


  안경을 써야 한다면 예쁜 안경을 쓰자는 생각에 형형색색 안경을 수집했다. 믹키유천이 예능 프로그램에 착용하고 나왔던 빨간 안경, 얼짱들이 자주 끼던 얼굴 절반을 가리는 뿔테안경은 당연하고 안경테를 색깔별로 모았다. 안경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렌즈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눈이 작아 보이게 되자 왕눈이, 부레옥잠이라는 별명도 친구들의 머릿속에 점차 사라졌다. (부레옥잠은 눈이 커서 물 위에 띄우면 부레옥잠처럼 둥둥 뜰 것 같다며 생긴 별명이다.) 그제야 눈의 소중함을 알았다. 나의 눈이 크구나, 예쁘구나.


  안경을 낀 방법도 궁리한 나인데 벗을 방법도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알아본 결과! 중학생 3학년 드림렌즈를 착용하게 됐다. 드림렌즈는 잠들기 전에 렌즈를 끼고 일어나 벗는 제법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경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너무나 컸기에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수면시간을 지켜가며 렌즈를 착용했다. 간혹 일어났는데 렌즈가 보이지 않아 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눈 안쪽에 들어있는 렌즈를 빼는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했고, 렌즈를 씻다가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경 없는 삶이 제법 풍족하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5년 가까이 드림렌즈와 함께할 수 있었다.


  성인이 돼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술 마시기, 밤새우며 놀기가 아닌 라섹 수술이었다. 백화점에서 남성복을 판매하고, 휴대폰 케이스 전문점에서 액정을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이백만 원으로 라섹 수술을 했다. 스무 살 인생에서 처음 하는 수술이라 긴장됐지만 설렘이 더 컸다. 마취가 풀릴 때 유리가 눈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드디어 눈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겠구나, 아침저녁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는 생각으로 통증을 이겨냈다.


  수술을 마치고 바로 세상이 환하게 보이진 않았다. 눈부심 증상이 심해서 한 달 가까이 보안경을 착용해야만 했다. 조금만 버티면 안경과 렌즈 없이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컸기에 ‘보안경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한 달의 시간을 거뜬하게 보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시력은 좋아졌고 맨눈으로도 칠판의 글씨를 식별할 수 있게 됐다. 성인이 되자마자 라섹수술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추진한 자신이 기특했다. 이 좋은 걸 나만 누릴 수 없다며 주변에 라섹 또는 라식 수술을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적극 권유했다. “아르바이트 한두 달만 하면 돼. 그 돈만 있으면 광명을 찾을 수 있다니까?”   


  눈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일상을 누리다가도 문득 걱정이 밀려왔다. 시력이 나빠지진 않았을까 불안할 때마다 안과를 찾았다. 안구가 건조해 시력이 낮게 측정될까 걱정돼 검사 전에 눈물 약을 넣어가며 시력 검사를 했다. 검사 후 1.0, 0.9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긴장이 풀리며 올해도 관리를 잘했다며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느낌이 들었다. 밤에 신호등이 심하게 번져 보이고 눈을 몇 번 깜빡이면 선하게 보이던 간판이 눈물 약을 넣어도 흐릿하게 보였다. 안구 건조증 때문이겠거니 짐작하며 안구 건조증을 극복하기 위해 잘 챙겨 먹지 않던 오메가3도 복용하고 사흘에 한 번 스팀 안대를 착용하고 잤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건조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용기를 내 안과를 찾았다.  


  “작년 겨울부터 시력이 뚝 떨어졌네요. 근시퇴행이 온 게 맞아요.”

  알면서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말을 의사 선생님에게 직접 들으니 생각보다 덤덤했다. 의사 선생님이 안경을 씌워주자 글자가 겹쳐 보이던 시력검사표가 훤하게 보였다. 맞아, 환한 세상이 있었지. 그런데 눈물 약으로 버티면서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을 애써 외면하고 지냈다. 라섹 후 교정된 시력이 지금의 시력이 아닌데 교정시력을 계속 붙잡고 오랜 시간 스스로를 괴롭혔다.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큰 결심을 하면서도 안경은 착용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찾아보니 라섹수술을 한 사람도 드림렌즈를 낄 수 있다던데, 착용이 가능할까요?”

 “환자분, 학생 때 드림렌즈 했었잖아요. 성인도 할 수 있지만 드물긴 한데 가능한지 먼저 검사부터 해봅시다.”


  사실 의사 선생님은 중학생 때부터 연을 맺어 드림렌즈를 맞췄고, 라섹수술도 했다. 오랜 기간 이 안과를 찾는 이유는 배우 송승헌을 닮은 선생님의 외모도 아주 큰 몫을 차지하지만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세심하고 다정하게 진료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환자분, 제가 방금 렌즈 업체랑 통화를 했는데요. 각막이 너무 평평해서요, 렌즈 제작이 안 된다고 하네요. 드림렌즈 착용이 힘들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의사 선생님이 손에 쥐여준 안경 처방용 시력표를 받고 안경점으로 향했다. 다시 안경을 끼게 됐으니 이제는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고 싶어 똑 부러져 보이는 갈색 뿔테안경을 구매했다. 안경과 투쟁 아닌 투쟁을 벌인지 어연 20년 차. 학창 시절 애써 맺은 인연이지만 안경과 끈을 놓기 위해 수년간 고군분투했다. 돌고 돌아 다시 안경과 조우하게 됐고 난 여전히 안경에게 이별을 고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얼마 전 다시 안과를 찾았다.  “안경 벗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나의 집요함 끝에 의사 선생님이 샘플용이라며 소프트렌즈를 건네줬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

  “사실 하드렌즈 제작이 힘들 정도라고 말하면 대부분 환자들은 포기하시는데 환자분은 어릴 때부터 안경을 벗고자 하는 목표가 확고한데요? 그러니 저도 방법을 더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같이 또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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