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준의 <읽는 기쁨>을 읽고
편성준 작가의 책 <읽는 기쁨>의 출간 소식을 SNS에서 보고 솔직히 반가움보다 기획자로서 ‘아차’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온 도서의 리뷰를 몇 달 동안 고정적으로 써주십사 한 적도 있고 누구보다 많이 읽고 쓰는 분인 줄 알면서 왜 먼저 제안을 하지 못했을까? 흑흑. 아쉬움이 몰려왔다.
어쨌든 예약판매에서 구매를 하고 댓글을 남겼더니 고맙게도 사인본을 한 권 보내주셨다. 그렇게 해서 <읽는 기쁨>은 2권이 되었다. 책이 도착한 뒤 지난 주말에 목차를 훑어보면서 나는 당황했다. 작가가 소개한 51권 중에 읽은 책이 별로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나마 아는 작가와 이름을 들어본 작품은 꽤 있었지만 놀랍게도 작품 제목은커녕 작가 이름조차 생소한 경우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마흔 이후 국내외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청소년 해외문학 시리즈를 내면서 청소년 성장소설은 제법 읽었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래되었다. 독서모임을 월2회 하고 있지만 읽는 책들은 사회, 인문, 자연과학에 편중되어 있다. 본격 소설, 시, 에세이를 소개한 리스트가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책꽃이에서 당신 책꽃이로 보내고 싶은 책’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편성준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소개한 책이기에 작가의 애정과 ‘부디 이 책을 다른 사람도 읽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흘러넘친다. 편성준 작가의 뽐뿌질에 넘어가 ‘어머나 읽고 보고 싶네’라고 1차로 추렸다가 뒤로 가면서 진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솔직히 말해봐. 진짜 읽고 싶은 거 맞아’ 하고 자문하면서 새로운 리스트를 추가하고 앞에 적은 제목을 지운 것들도 있다. 이야기인즉 작가의 꼬드김에 넘어가 취향이 아닌 리스트에 찜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소개하는 작가의 내공과 유혹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
작가가 어린 시절 동화책을 보다가 강렬한 기억을 남긴 로봇 이야기를 성인이 되어 찾다가 도서관에서 ‘필립 K. 딕의 SF 걸작선 시리즈’ 세 번째 책 <사기꾼 로봇>을 펼쳤다가 표제작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놀랍고 기뻤다는 이야기에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동화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청소년 문학 시리즈에서 다시 내고 싶어서 찾다가 <시간의 주름>이라는 신간 소개글을 보고 같은 내용임을 발견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벌써 15년 전 이야기인데 책 제목을 알게 된 건 좋았지만 기획자로서는 좋은 책을 놓친 셈이라 아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어쨌든 다 읽고 나니 고민이 생겼다. 맘 같아서는 다 읽고 싶지만 51권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못 읽을 것 같은 책도 있고(분량과 취향의 문제),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다 구입할 수도 없다. 그래서 편성준의 책꽃이에서 내가 발견한 책의 리스트를 구분해서 작성해 보았다.
여성 책 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
그린트 스나이더의 <책 좀 빌려줄래?>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
소장하고 싶은 책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필립 K 딕의 <사기꾼 로봇>
로버트 막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읽고 싶은 책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설재인의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 1,2
필립 K 딕의 <사기꾼 로봇>을 소장하고 싶은 것은 필립 K. 딕이 내가 좋아했던 SF 걸작영화들의 원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토탈 리콜>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 문득 리스트를 작성하며 내가 스토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 내 여유 시간을 채웠던 것도 소설 읽기였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기 우울했던 나를 위로했던 것도 SF, 판타지, 로맨스 같은 대중 소설이었다. 신철규의 시집은 마음이 힘들 때 한 편씩 읽으면 절벽 끝에서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위안을 줄 것 같고, 로버트 막기의 책은 책꽃이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밑줄치며 읽고 싶다.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내 소설 읽기는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평 쓰기도 함께. 그 계기를 마련해준 편성준 작가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취향도 큐레이션도 개인적인 선택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혹시라도 이 책 덕분에 '책 읽는 기쁨'을 다시 찾는 분들이 생긴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읽는 기쁨>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