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수영
어떤 감각은 때를 가린다. 언젠가 오솔길을 달리다 우박을 맞은 적 있다. 무섭게 퍼붓던 빗줄기와 딱딱한 우박이 살을 파고들어 눈물이 날 만큼 아팠지만, 그 날카로운 감촉이 생경하면서도 벅차게 후련했다. 예측 불허의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맞은 생생한 자유였다. 반면 집에서의 우중 수영은 선택의 여유를 준다. 비와 물 그리고 몸이 한데 어우러진 낯선 감각을 원할 때 누린다.
두 귀가 물에 잠길 때와 떠오를 때, 청각의 세계는 노이즈 캔슬링의 온오프처럼 또렷하게 구분된다. 빗방울이 수면을 두드리고 젖은 나뭇잎이 바람과 섞인다. 소리들이 겹겹이 포개질수록, 증폭장치라도 켜진 것처럼 귀가 더욱 민감해진다. 호흡과 움직임만으로도 청아하던 리듬에, 하늘의 선율이 더해져 풍성한 교향악을 연주한다.
떨어지는 빗물을 수중에서 바라본다. 수면과 눈높이를 맞춘 완벽한 수평의 시선. 빗줄기가 물에 닿는 찰나를 정면에서 포착한다. 하늘에서 출발한 낙하를 맨 앞줄에서 직관하는 듯한 신비로운 장면이다. 땅에서는 납작 엎드려야만 겨우 닿을 바닥의 낮은 시점을, 물침대에 누워 편안히 즐긴다.
수면 위로 하강하는 빗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비가 '내린다'는 표현이 얼마나 밋밋한지 알게 된다. 비는 단순히 직선으로 꽂히지 않고, 원을 그리며 번지고 퍼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갓 태어난 동그라미라서 더욱 살아있다. 바람에 출렁이는 물살과 빗물이 접촉하며 다양한 지름의 파문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우중 수영의 자극은 영법에 따라 다르게 깨어난다. 평영은 동심원의 향연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다. 머리가 상하로 오르내리고 앞을 향한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면 수면 위를 때리는 빗방울이 선명한 동그라미를 만들고, 곧바로 물속으로 잠기면 물을 뚫고 흔든 떨림이 잔잔히 퍼진다. 생살처럼 얇은 습자지에 꾹꾹 눌러쓴 펜 자국 같다. 물 위아래를 오가며 그 종이의 앞뒷면을 번갈아 들여다보게 되는 독특한 시점이다. 강우의 세기에 따라 떨림의 밀도와 간격이 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세찬 빗줄기라도 수영장 바닥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아무리 거센 비라도 살을 꿰뚫지는 못한다.
시각의 아름다움이 평영의 몫이라면, 촉각의 예민함은 자유형이 차지한다. 수면 위로 몸이 넓게 펼쳐져 빗물이 닿는 면적도 그만큼 크다. 전신이 물 표면에 가까이 놓여, 빗방울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코와 입으로 빗물이 사정없이 들이친다. 수경을 또각또각 두드리는 빗방울이 눈을 열어달라는 노크 소리 같다.
비의 온도는 측정이 어렵다. 구름에서 떨어지며 대기와 만나는 동안 계속 변하고, 대체로 그날의 기온보다 약간 낮다. 그래서 매번 다르고,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미리 예측할 수도, 후에 재현할 수도 없는 유일한 온도를 고스란히 끌어안는 셈이다.
알맞게 데워진 수영장보다 살짝 차가운 빗방울이 살갗에 닿으니 한없이 상쾌하다. 예민해진 촉감이 피부를 간질인다. 일부러 간지럽힐 때처럼 움츠리며 오그라드는 게 아니라, 척추가 쭉 펴지고 키가 커져 당당해지는 기분이다. 말초에서 시작된 자극은 안으로 수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바깥으로 퍼지며 점점 이완되고 확장된다.
머리를 톡톡 건드리는 빗자락이 부드러운 채찍이 되어 몸을 앞으로 이끌어준다. 비바람이 거셀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나와 물, 그리고 또 다른 물이 융합하여 더 깊고 단단한 물의 친교를 이룬다. 이들이 하나로 얽히는 순간,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는 듯하다. 밀어젖히며 나아갈수록 거칠 것 없어진다. 사람과 자연의 합일이 내면의 해방감으로 이어지는, 경이로운 자유의 시간이다.
맑은 날만 고르지 않고, 궂은 날씨를 피하지 않으니 미처 몰랐던 것들과 조우한다. 하늘이 내어준 그대로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살아본다.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면 마주하고 온몸으로 가르며, 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