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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의 친교 13화

에필로그 | 온몸으로 만져지는 행복

수영장 불을 끄며

by 소라비

행복이란 걸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전 그게 수영 같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온몸을 휘감는, 낱낱이 실체적인 기쁨. 브런치에 올린 첫 번째 글도 자유형과 물을 향한 고백이었습니다.


수영에 대한 단상을 예전부터 꾸준히 적어왔어요. 물과 만나면 솔직해지는 몸만큼이나 투명한 글을 쓰고 싶지만, 매번 어렵습니다. 그래서 묘사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게 이번 연재의 목표였어요. 글이란 게 꼭 줄거리나 서사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주장도 없이 물처럼 흘러가도 그만인 글을 써보려 했습니다. 자꾸만 의미를 보태려는 욕심을 누르며, 메시지가 아니라 물에게 주인공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제 글이 수영장의 풍경을 비추는 창문이기를 바랐습니다. 오래된 구식 수영장이라 깨진 타일과 더러운 자국이 많아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 공간을 나누고 싶었어요. 유난히 더웠던 여름, 시원한 물결이 창 너머 거기까지 번져갔다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나마 함께 수영을 한다는 댓글을 종종 만납니다. 저도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낯선 노래에 사연을 얹고, 살아본 적 없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어쩌면 이런 무해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희망이나 미래를 섣불리 말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가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건 결국 상상의 나래가 아닐까요.


물속의 저는 엄마 뱃속의 태아였다가, 사뿐한 무희가 되기도 하고, 밤하늘을 나는 우주비행사였다가, 돌진하는 여전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캐릭터를 바꿔가며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123차례, 매회 2,000미터씩 헤엄쳤어요. <물고기의 꿈>이라는 글에서 물고기의 헤엄으로라도 기어이 모어를 쫓겠다고 썼습니다. 계산해 보니 그 속도로는 50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더군요. 갈 길이 머네요. 조바심 내지 않고 가겠습니다.


어느덧 두 번째 연재를 마칩니다. 수백, 수천 개의 글이 쌓인 계정에 비하면 아주 소소하지만, 이 몇 방울이 제게는 소중합니다. 수영으로 치면 아직은 얕은 물에서 첨벙대는 수준이어도, 언젠가는 물을 베고 편안히 눕겠습니다.


이제 수영장 불을 끌게요.


물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남았네요. 덕분입니다.




연재 제목인 <물의 친교>는 김행숙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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