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변명
"어쩜 여긴 이렇게 변한 게 없어?"
학창 시절을 토론토에서 보냈던 친구가 수년 만에 다시 와서 한 첫마디였다. 맞다. 낙후된 교통 시스템부터 '노잼 도시' 바이브까지,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 친구가 한마디 더 얹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데, 여긴 왜 거꾸로야. 아주 느려 터졌네." 그 말도 맞다. 실제로 거리엔 마약 중독자와 노숙자가 흔하고, 모든 게 숨 넘어갈 만큼 더디다. 머리로는 수긍이 간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억울하고 찜찜하다.
그렇다면 왜들 워홀을 오고, 영주권을 따고 싶어 하는 건데. 살기 좋은 도시라고 뽑힌 이유가 뭔데. 조목조목 반박하자니 왠지 모양새가 우습고, 당장 변명거리도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이후, 나는 줄곧 이곳에서 살아왔다. 반나절 넘게 걸리는 비행 거리 탓에 한국은 쉽게 오가기 어렵고, 가더라도 오래 머물기 힘들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나를 잇는 끈은 한국마켓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곳이 내 삶의 유일한 터전이 되었다.
토론토에 사는 사람을 토론토니언(Torontonian)이라 부른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이 도시에 속해 살아간다. 누가 내게 "캐나다인이야, 한국인이야?" 물으면,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냐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몹시 신중해진다. 하지만 "너 토론토니언이야?" 하고 물으면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블로그를 시작으로 SNS에 글을 써왔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배경으로만 등장했다. 언젠가는 써야지 막연히 상상했는데, 지금이 그 '언젠가'여도 괜찮을 것 같다. 한 번도 정면으로 다뤄보지 않은 주제라서 나도 궁금하다. 경계에 선 한 토론토니언의 시선으로 이 나라를, 그리고 그 너머를 어떻게 그려낼지.
토론토, 캐나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그 친구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대답을, 늦었지만 이제부터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캐나다에 대한 연재를 마음먹고, 어떻게 시작할지 많이 고민했다. 친구가 지적했던 느림, 답답함, 불편함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을 파고들자, 모든 길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바로 공간. 캐나다의 방대한 지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를 넘어서, 광활한 영토의 기운이 문화와 국민성의 뿌리까지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땅부터 짚고 넘어가려 한다. 캐나다의 국토를 구성하는 지역들을 직접 밟고, 그 공기를 들이마셔 보겠다. 이 거대한 규모가 정말 사람을 빚고, 문화를 이루고, 일상을 규정하는지 따라가 보겠다. 땅을 둘러본 후 국가 시스템으로, 문화로, 마지막엔 개인으로 줌인할 계획이다.
아직은 가상의 목차만 덩그러니 있지만, 제법 그럴듯해 보여 가슴이 웅장해진다. 동시에 겁나기도 한다. 발끈해서 일을 벌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커져 버린 느낌이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끝맺음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캐나다 대표도 아니고, 거창한 주제지만 소소하게 풀어가려 한다. 관광 안내서처럼 환상을 심어줄 의도도, 학술 기록처럼 객관성을 지킬 고집도 없다. 그냥 친구에게 뒤늦은 변명도 할 겸, 모국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나 자신을 위안 삼을 겸이다. 써 나가면서 내가 왜 여기 사는지 납득하게 된다면 좋겠다. 긴 호흡의 여정이 될 텐데, 함께 걸어주시길 바란다.
매 화 끝에는 가끔 영어 표현도 담을 예정이다. 현지에서 쓰는 말, 번역하면 맛이 죽는 문구, 때로는 문학적인 표현이나 문화적 키워드까지. 있는 그대로 느껴야만 하는 것들. 그 또한 여기 삶의 일부니까.
"The Great White North"
캐나다를 가리키는 별명이다. 광활한 북쪽, 눈 덮인 땅. 그 위에 첫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