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짐을 모으러
'그래서 그다음은 어디야?'
익숙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봤다는 그 표정.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 토론토에서 가장 가까운 명소다. 하지만 내게는 상당히 애매한 장소이기도 하다.
왕복 네다섯 시간. 집과 정반대 방향이라 도시를 가로질러야 한다. 트래픽에 걸리면 하루가 다 간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해도 막상 가면 폭포 외에는 딱히 볼 게 없다. 바로 앞에 관광 타운이 형성되어 있지만, 별로 끌리지 않는다. 정작 볼 만한 와이너리 지역인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on-the-lake)도 도보 거리가 아니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떨어져 있다.
토론토에서만 nn년째 사는 나는 똑같은 폭포를 nn번째 다닌다. 국가적 보물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열 번 이상 보면 뭐든 덤덤해질 수밖에 없다. 동행만 계속 바뀔 뿐, 풍경은 언제나 그대로다. 이제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다. 어차피 늘 똑같다. 물기둥, 무지개, 보트.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오히려 차 안에서 친구들과 밀린 얘기 나누는 시간이 더 길고 더 즐겁다.
도착하자마자 "오, 멋져" 하고 사진 몇 장 찍고, "이제 다 봤다"며 곧바로 다음 장소를 재촉할 때면 맥이 빠진다. 와이너리 같은 소소한 포인트들로 방문객들의 높은 기대치를 채울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그럼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하지?
먼 길 온 손님들을 생각하면 나도 미안해진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왜 이 나라는 명소들이 흩어져 있을까? 웬만큼이라도 모여 있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분산의 규모가 이 땅의 크기만큼 과하다는 점이다. 차로 한 시간은 '바로 옆', 두세 시간쯤 걸려도 '근처'라 한다. 나이아가라가 애매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나라의 거리 감각.
예전에 하루 열여덟 시간을 운전한 적 있다. 일주일 휴가였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 차로 다섯 시간. 몬트리올에서 도깨비의 도시 퀘벡 시티까지 또 세 시간. 그리고 최종 목적지까지 한 시간을 더 갔다. 그림 세 점을 충동구매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고, 숙박비가 없어 그날로 돌아와야 했다. 당일치기가 열여덟 시간 운전인 게 이 땅의 스케일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새삼 놀란 건 압축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놀던 학교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았을 때의, 그런 감회. 모든 게 가까웠다. 한국은 너무나도 작은데, 서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반면 캐나다는 거대한데, 토론토 중심가는 차로 몇 시간이면 다 돈다. 이 극단적인 대비가 무얼 의미할까?
한국에서 차트 1위를 하면 여기저기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카페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듣기 싫어도 하루에 몇 번씩 귓가를 스친다. 그게 '유행'이니까. 하지만 여기선 K-pop이 아무리 빌보드 차트 1위를 해도 곳곳에 퍼지지 않는다.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듣는다. 유행이 저절로 번지는 게 아니라, 취향에 따라 찾아야 한다. 문화와 경험이 분산되어 있다는 걸 이렇게 체감하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다섯 시간.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는 마흔일곱 시간. 4,200km다. 경부고속도로를 열 번쯤 이어야 닿는다. 하루 여덟 시간씩 운전하면 엿새가 걸린다. 비행기로 밴쿠버에서 대륙 반대편 뉴펀들랜드까지 일곱 시간. 같은 나라 안에서도 시차가 네 시간 반이다. '9시 뉴스'라는 타이틀로 전국 생중계는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
이런 숫자들을 보면서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 흩어지는 걸까. 사람도, 문화도, 속도도, 그리고 유행까지. 캐나다 사람들이 왜 느긋한지, 왜 도심의 카페보다 외곽의 별장 문화가 발달했는지. 느림과 흩어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동네를 걷듯 나라를 달린다. 로드트립으로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토론토에서 로키를 거쳐 밴쿠버, 그리고 대륙 반대편 뉴펀들랜드까지. 흩어짐을 모으러 떠난다.
"The 6ix"
416 지역번호에서 유래한 토론토의 별명. 온타리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토론토 광역권(GTA, Greater Toronto Area)에 밀집해 있다.
"T.O."
Toronto, Ontario의 약자. 'TORONTO' 중 'TO'만 하이라이트된 디자인을 흔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