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공간

하늘 도화지

by 글날 스케치MOON

결이 다른 조금 특별한 산책이 오늘도 나를 타인의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 특별한 순간이 시작되는 새벽 3시 50분.

'띠리리링... 띠리리링...'

'삐비비비비 삐비비비비'

고요함이 가득하거나 적막이 흘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새벽시간에 머리맡 두개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천겹처럼 무거운 눈꺼풀은 천천히 떠진다.

날카롭지는 않지만 이 시간 침실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기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멜로디,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익숙하듯 일어나서 가볍고 빠르게 집을 나설 채비를 마친다.

솜사탕 마냥 무한하게 달콤한 새벽잠을 힘겹게 이겨내고 매일 새벽 쓰디쓴 보약을 온몸으로 들이켜듯 비장하게 아니 그보다 더 강인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선다.

여전히 '아,,, 좀 더 자고 싶은데... 벌써 반년이나 했는데.... 이제 그만할까' 싶다가도, 나약한 내 안에 어린 투정은 엄마에게 엄히 꾸짖음을 듣고 서운한 마음이 들킬까 빨리 모습을 감추곤 한다.


매일 새벽녘의 공기 온도에 맞춰 호흡하기 시작하여 벌써 6개월이 꼬박 흘러갔다.

차디찬 영하 12도의 새벽 온도, 올해 첫 한파 특보가 내리던 날, 그때 낯선 곳에서 처음 맞이했던 북극 찬 공기의 냄새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하루 이틀 매일 내 얼굴에 따가운 가시를 쏘아대던 거친 기운은 어느덧 두번의 계절을 겪으면서 많이 순해졌고, 그 동안 의도치 않게 나의 목적지도 한차례 이동을 했다.

6월이 시작되면서는 내가 이동하는 시간에 길가에 잠들었던 새들도 일어났다고 서로 먼저 깨우듯 하늘 높이 지저귀고, 내 마음 속 고요도 이미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웅크림을 일으킨다. 심지어 칠흙같던 하늘까지도 요즘은 여명으로 희미하게 주변을 살펴주기 시작한다.


오늘은 내 특별한 산책에 큰 획을 그어주는 이벤트까지 일어났다. 아마도 그간의 쌓여간 작은 나의 노력들에 보상을 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완벽한 타인의 공간 속, 21층 복도 끝 유리창 너머의 하늘은 붉은빛과 보라빛, 주황빛, 푸른빛의 물감이 물 한두방울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려진 듯한 하늘 색상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동트기 직전 붉게 타오른 하늘, 나는 수십초간 넋을 잃은 채로 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일분 일초가 귀한 이 시간에 수십초 동안의 사치는 오늘 내가 한 사치 중 최고치이다. 나의 눈과 내 가슴 속은 도화지 속 수채화 마냥 저 하늘의 색상과 잘 어울리려나.

오늘 내 눈 안에 하루의 일렁임을 제일 먼저 담아냈네.

남들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하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먼저 볼 적이 많았고, 그 시간에만 허락되는 또 다른 찰나의 행복들도 있었다.

이 날도 그런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유독히 차고 추웠던 지난 25년 1월의 어느 날, 내 패딩 모자와 어깨 위 소복하게 쌓이던 눈송이들은 요정처럼 내게 다가와 매 순간 속삭임을 아끼지 않았다.

성난 찬바람들이 나의 품으로 파고 들려고 거세게 소리치던 아우성 때문에 힘에 부쳐 힘겨운 순간들도 있었다.

어느 덧 훈훈한 봄바람이 내 뺨을 부드럽게 스쳐주고 가던 날은 아득하게 편안했고, 오늘같이 하늘부터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를 시작하여 내 시야 전체를 분홍빛, 노란빛으로 물들이던 찰나가 허락될 때는 내 모든 손짓과 몸짓을 멈추고 그 순간을 온전히 소유하려고 했다.

이 모두가 내가 속해 있는 순간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내일도 그 다음날도 새벽 3시 50분에 소풍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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