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안의 너와 나
그때는 나도 처음이었다.
결혼하고 직장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던 나에게는 잠시 혼자 걷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치였다.
맞벌이 부부에게는 남녀 두 사람 모두 정신력을 지배하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주말에는 주중에 못 봤던 아이를 한 번 더 들여다보아야 했고, 특히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일주일간 밀린 빨래거리를 5~6번 나누어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출퇴근으로 왕복 3시간을 쓰는 워킹 맘에게 회사 퇴근은 곧 육아 출근이었고, 잠자는 시간마저 육아의 연속성 위에서 매일 줄타기처럼 위태위태했다.
퇴근 후 저녁 7시 40분, 나는 마을버스 정거장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어린이집까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전력질주가 그날의 운동을 대신했고, 아이가 먹다 남긴 밥풀과 간기 없는 밑반찬은 나의 저녁을 대신했다.
남편의 회사까지는 집에서 30분거리, 나의 회사까지 1시간 30분 거리인 탓에 나는 하루에 버스와 지하철을 무려 8번씩 타야만 했다. 신혼집과 회사가 먼 까닭을 애꿎은 시댁 탓으로 돌리며 서운함에 눈물을 훔쳤고, 오히려 그 탓을 남편에게 쏟았다.
남들 마냥 살갑게 외손자를 봐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그 와중에 '둘째는 왜 안 낳느냐',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자식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느냐’, ‘회사 그만두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좀 아껴서 살아라’는 친정 엄마 말은 나에게 망치와 같았다. 서운함은 마음의 폭포가 되어 내 마음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운전 30분 거리인 친정에는 명절을 빼고 약 2년 동안은 거의 발걸음을 멈추었다.
집에서 육아만 하면서도 힘듦을 토로하는 다른 엄마들의 투정이 나에게 세찬 시샘거리 였고, 어린이집에 자녀들을 보낸 후 삼삼오오 모여 카페에 가는 그들의 삶이 나를 더 빈곤한 궁지로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이 살얼음 같던 날 선 나의 신경은 결국 마음을 병들게 했고, 8년간 연애하며 싸움이 없던 우리 부부사이에도 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는 고슴도치였다.
나의 가시가 나를 찔렀고, 가시 끝에 묻은 까맣고 바랜 색상의 물감은 소중한 우리 가족의 스케치북에 얼룩을 그려졌다.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 아이가 아플 때면 '아,,, 회사 지금 바쁜데 왜 애가 아픈 거야...'하며 아이의 병 치례가 버거웠고, 간혹 38도가 넘는 고열로 뜨겁게 닳아 오르는 아이를 안고 아이스크림과 해열제를 먹이며 억지로 열을 내려 어린이집으로 강제 등원까지 시켜야 했던 매정한 엄마였다.
회사에 두 번만 사정을 반복해도 '야, 당신 애는 뭐 그렇게 자꾸 아프냐' 했고, 주변 직원들도 들리게 크게 말하는 상사의 모진 말 때문에 숨고 싶었던 내 마음은 지금도 참 아프다.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았고, 모두가 원망스러웠고, 매일 몰아치듯 세차게만 돌아가던 나의 물레방아는 결국 조금씩 삐걱거렸다.
약 10여년 전 여기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면서 어렵게 지금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와서야 집에서 200미터정도만 걸어 나가면 한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아이가 6~7세정도 되었을 때부터는 여의도 한강공원에 자주 돗자리를 깔아두고 시간을 보냈다. 당시에도 매일이 에너자이저인 사내아이를 풀어놓기 위한 공간으로 한강 공원은 매우 적합했고, 그 시점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남편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차선책으로 택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매일 자라나 어느 덧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나이가 되었으며, 그토록 끝이 안 보이던 육아에서 하루에 0.1mm의 간격으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더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하던 2019년 여름 날, 약 15년간 근무한 직장을 퇴사하며 나의 찬란하던 30대의 정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아, 끝났다…
그후…
한동안 이상하게 숨을 잘 못 쉬어서 괴로웠고, 잠을 못 자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때는 잘 몰랐었다. 나에게 온 그 병명이 공황장애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호흡이 안되고 숨이 너무 막힌다며 병원에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지만 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 너무 무서웠고 두려웠고 무엇을 해야 할지 그때는 어디에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벽장안에 있던 나의 내 일상을 조금 바꿨다.
밝은 낮 시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연을 만끽하며 나 스스로와 데이트를 시작해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라마 몰아 보기를 하면서 속절없이 울어보고, 평일에는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취미활동으로 그림도 시작했다. 일반인들도 쉽게 한다는 명화 그리기를 밤새 색칠해보다가 꼴딱 밤을 새며 새벽을 맞이했고, 취미반으로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수강하며 자연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예쁜 꽃들도 그려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 마음의 파도는 잔잔해졌고, 고슴도치 같던 내 마음은 그렇게 습자지 위 물방울처럼 자연스럽게 색도 바뀌고 모양도 변화되어 갔다.
얼어붙어 있던 마음은 봄날 얼음이 녹아 내리듯 조금씩 크랙을 넓혔고, 계절과 날씨가 허락하는 순간마다 자연안에서 일상적인 변화를 찾아보았다.
시간을 들여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했고, 함께 각종 문화생활에 동참했으며, 나만의 취미활동에도 정성껏 공을 들였다.
벗삼았던 우리의 시간들은 다양한 밑재료가 되어서 부부는 대화의 온도와 밀도를 천천히 높여갔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나는 마음이 많이 열리고 다정해졌다.
아팠던 남편은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사회구성원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그사이 훌쩍 성장하여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느덧 나의 신발장에는 예쁜 구두보다 발 볼이 넓은 운동화가 더 많아졌다.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수많은 걸음들과 보통의 대화들로 채워진 시간의 이름은 ‘치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