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설은 거리, 낯 익은 걸음, 우리가 마주한 산책길

짧은 걸음 속 긴 생각

by 글날 스케치MOON

푸르른 하늘 아래 차라락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경쾌하게 울린다.

어느 덧 6월 중반에 접어들어서 한낮의 해만 피한다면 이른 오전 혹은 초저녁 이후부터는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순간이기에 청량함이 풍성한 초여름의 어느 소소한 날들을 기록해본다.

1년 중 쾌적하면서 싱그러운 걸음이 가능한 시기가 얼마나 허락될까 하니 오늘 같은 날이 모인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더 없이 귀하기만 하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조금은 긴 걸음의 하루를 선택했다.

서강대교부터 행주산성까지 시원한 한강변 공원길을 따라 걸어본 내 발자국 지도의 길이는 대략 약 15km.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발걸음이 합쳐지면서 그 동안 내가 차도나 자전거도로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넘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닳았다.

주고받은 대화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소소한 감탄들

"아~ 이쪽으로 가면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는 길도 있구나"

"한강에 잉어가 엄청 커. 애들이 엄청 큰데? 와~ 저쪽에 봐 봐, 저거 자라야? 하나 둘 셋 우와 저기보다 이쪽에 자라가 훨씬 더 많아"

"방금 들렸어? 여기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 뻐꾸기는 깊은산에 사는 새가 아니었나?"

"으아악! 뭐야, 이거 도마뱀 시체 아니야?"

"저 나무 희한하다, 기둥이 하나인데 저쪽 가지는 잎이 풍성하고, 이쪽 가지는 모두 말라 죽었어"

"저기 오리새끼다~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 잘들 부화했네. 귀여워~ 근데 어미가 우리를 노려봐. 가자가자 어미가 경계한다"

"이건 무슨 꽃인줄 알아? 여기에 처음 보는 꽃이 아주 많이 있어"

"바닥이 완전 딸기밭이야~ 뱀딸기 인가봐. 이 딸기는 새가 먹나? 사람이 먹어도 돼?"

"까치도 더운가 봐, 애들이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

"한강에도 이렇게 작은 길들이 참 많은것 같아. 우린 왜 그동안 몰랐을까?"

"이쪽 길은 마치 제주도 곶자왈이랑 비슷한 것 같아, 나무도 우거지고 여기 덩굴들도 참 많다. 평지에 있는 숲속길 같아."

바쁘다는 이유로 그 동안에 스쳐 지나던 많은 것들이 비로소 이렇게 천천히 걸을 때 보였다. 자연의 냄새도 맡고, 점점 뜨거워지는 햇빛도 느끼고, 바람 소리와 새 소리도 듣고, 걷는 내내 나의 호흡도 느꼈다.


함께 15키로를 걷는 약 3시간 동안 부부간의 대화에는 자연스러운 물길이 생겨났다. 걸으면서 나눈 마음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으며, 마주했던 싱그러운 감동들은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마법까지 만들었다.

부부는 낯 설은 거리, 낯 익은 걸음으로 우리가 마주한 산책길을 바라보며 천천히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설은 거리, 낯 익 걸음, 우리가 마주한 산책길낯 설은 거리, 낯 익은 걸음, 우리가 마주한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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