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주는 다름

일상 한걸음 더

by 글날 스케치MOON

얼마 전 주말 저녁, 나의 평소 루틴과는 조금 다른 산책을 나섰다.

지난 주말 출장을 다녀온 후 몸이 대차게 고장났다.

지독한 오뉴월 감기가 불청객 마냥 찾아왔고, 나는 침대 위에서 감기 기운과 약기운에 홀로 씨름을 했다.

편도염, 콧물, 기침, 재채기, 가래 등의 증세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내 호흡기관들은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 보였다.


장마기간이라고 했거늘 6월의 장마는 건조하고 뜨거웠다.

목/금요일에 내리던 장맛비는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태양의 힘을 거세게 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오전 8시, 이미 우리 집 거실은 6월과는 어울리지 않는 강렬한 햇빛과 후끈해진 열기에 거실 절반이상이 삼켜졌고, 난 조심스럽게 커튼을 내려 나의 공간을 보호했다.


좀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하루였다.

몸의 움직임이 느리니 시간도 느리게 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다시 침대에서 몸을 천천히 꺼냈는데 문득 커튼 밖이 궁금하다는 생각과 시원한 공기의 움직임이 느끼고 싶었다.

창문 너머의 나무를 바라보니 하늘하늘 가로수 잎을 춤추게 만드는 바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주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향해 응시했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들뜬 웃음소리가 집안으로 스며 들어왔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소리에 나도 모르는 미소가 내 얼굴에도 스몄다.

정체되어 있던 집안 공기와 함께 내 기분은 거대한 돌덩이 마냥 깊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걸까 그저 소리만 내 귓가에 닿았을 뿐인데 내 마음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하루 종일 나와 한 몸이던 잠옷을 벗고 새로 산 블랙 짧은 반바지에 가벼운 흰색 면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단목 흰 양말에 흰색 운동화, 질끈 묶었던 머리는 풀러 흘려 내려주고, 노메이크업 민 낯을 숨겨줄 블랙 캡모자를 깊숙하게 눌러썼다.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는 것 만으로도 하루 종일 잠옷바람일 때 보다 마음이 더 나아졌다.

이번에는 가벼운 산책으로 짧고 쉬운 경의선 숲길을 선택했다.

온 종일 기침 외에는 소리를 내지 않았던 탓에 내 목소리에는 메마른 건조함이 가득했지만, 팔 다리의 작은 움직임은 느긋하던 내 심장 박동수를 조금 올렸고, 발걸음이 한 걸음씩 쌓일수록 마음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산책하기로 마음먹고 또 마음이 가는 대로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 기분이 달라지다니 사람의 몸과 마음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경의선 숲길에 다다르니 이미 숲길 화단에서부터 짙은 녹색, 연녹색, 노랑을 띈 녹색, 붉은기를 가진 녹색 등 다양한 색깔의 녹색이 나를 맞이했다.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이름 잘 모르는 화초들, 건물과 키재기를 경쟁하듯 쭉 뻗은 나무들, 지저귐만으로도 듣기가 좋은 새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짙은 녹음의 나뭇잎들이 나를 정말 숲속 깊은 곳으로 이끌어 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 반려견의 리드줄을 잡고 천천히 홀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숲길 옆 식당에서 오픈런 대기중인 젊은 데이트 청춘들, 다들 각자의 작은 설렘과 행복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서 끙끙거리고 있을 때 보다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웃음을 보니 나도 절로 기분이 조금 더 나아져 가는 듯 했다.


평소라면 한시간은 더 걷고 가자고 짝꿍에게 말했을텐데 체력이 떨어진 만큼 약 30분의 짧은 시간도 욕심이 되어 이내 나를 집으로 다시 이끌었다.

거친 나의 호흡이 선선한 바람을 밀어냈고, 콜록거림에 재차 움직이는 내 몸과 무거워진 두 다리가 가벼운 내 마음을 앞섰다.

몸이 간절히 휴식을 원했다.

그럴때는 몸의 바램을 들어줘야 한다.

조만간 더 가벼워진 나를 만나게 되길 바라며, 찰나처럼 짧게 만난 나의 마음에게 또 만나자고 속삭였다.

내일은 달달한 꿀물같은, 그리고 깃털만큼 가벼운 산책길을 꿈꾸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다음번 산책에서는 한잔 들이킬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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