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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갑자기 독일어? 등떠밀려 배운 독일어의 최후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나는 다시금 일상이 시작되었고, 내가 백수라는 슬픈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백수는 나에게 치욕적인 타이틀이었기에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어서 이것저것 할만한 일들을 알아보았다. 어차피 올 한 해는 군대를 갈 수도 없고, 대학을 갈 수도 없으니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했다. 막막하고 조급함에 나는 주변 조언에 쉽게 흔들렸다. 그 결과로 나는 갑자기 독일어 학원에 등록을 했고, 바로 다음날 학원에 나가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독일어를 배워서 독일로 유학을 가라는 말에 선뜻 동의가 되어서 독일로 오페어 (베이비 시터-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 집에서 숙식하며 외국어 공부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그렇게 독일어를 시작했다. 독일어를 시작하고 나니 돈도 필요해서 속전속결 동네 핫도그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결국 내 일주일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학원과 알바로 채워졌다. 


독일어 학원은 평일 아침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쉬는 시간 빼고 3시간 수업이었다. 한 반에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첫날엔 역시나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어색했다. 그런데 이번 학원도 첫날부터 아주 강행군이었다. 아베체데 (독일어로 ABC) 도 모르던 나는 그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독일어로 인사를 나눠야 했다. 다들 어색해 하면서도 열심히 인사를 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도 같은 반 사람들 얼굴 익히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와 같이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전공과, 나이와, 목표를 가지고 학원에 왔다. 그중에서도 나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다. 특별한 목표가 없는 것과, 독일어에 대한 기초지식과 충분한 의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사전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다. 선생님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배움에 있어서 나태함을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는데,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제대로 배우려면 그런 선생님이 좋겠지만 그 당시 나는 조금 쉬운 수업을 원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매일 그날 배운 페이지를 복습해야 했다. 숙제도 꼬박꼬박 나왔고, 성적에 시험도 포함이 되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이 안 좋게 나오면 다음 반으로 진급할 수가 없었기에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우리는 동그란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틈틈이 쉬는 시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첫 수업부터 선생님이 자꾸 “노할말?” 혹은 “알래스카?” 라는 말을 하길래 그게 뭔지 정말 궁금했다. 대충 분위기 보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저기 혹시... ‘노할말’ 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 그건 ‘다시 한번 듣겠습니까?’ 라는 말이에요” “아하!! 감사합니다. 저는 그 말이 NO할말(할말 없음) 인줄 알고~ 맨날 노 할말~ 이랬는데요;;” 그러자 같은 조 사람들이 모두 빵 터졌다.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그 말 한마디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억에서 지워질 때쯤 한 번씩 다시 재탕되었다. 한 달간의 수업이 마무리 될 쯤 우린 서로 꽤나 가까워져 있었고, 특히 선생님과 굉장히 친해져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의 집에서 파티를 했다. 다시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친해졌다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 느낌이 좋아서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고, 배울 점이 많아서 눈여겨본 사람도 있었고, 나랑 잘 맞아서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둘째 달에는 반이 올라가면서 몇몇과는 작별을 했다. 마침 개강 시즌과 겹쳐서 재학생들은 모두 대학 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시간대의 반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수업을 들었고, 바뀐 선생님은 저번 선생님보다 여유롭게 진행을 해주셔서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서 첫 번째 수업의 빡센 선생님이 돌아왔고, 급격히 어려워진 수업과, 새로 바뀐 반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 나는 열흘 정도 수업을 듣다가 수업 환불을 결정했다. 그만둔 이유는 복합적인데, 우선 수업이 어려워서 따라가기 벅찼다는 것과, 그 당시 오페어 하우스를 구하던 나에게 많은 집들이 안될 것 같다는 거절의 메시지를 보낸 이유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어이없겠지만) 조별 과제를 할 때 내가 쓴 단어에 줄을 찍찍 긋고 올바른 철자로 다시 쓴 그 사람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2개월 하고 조금의 독일어 수업이 끝이 났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리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게 조금 아까웠다. 학원비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걸 다 내고 다닌 나도 참 원망스러웠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거나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학원이 끝나면서 같이 끝나버린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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