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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Aug 22. 2024

여름에 만나는 사이

 다르지만 달라서 더 좋은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예전엔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루에도 서너 번씩 하는 여름이다. 어렸을 적엔 엄마 심부름으로 얼음집에 얼음을 사러 가고 에어컨이 없는 학교를 다녔다. 여름 방학이면 빨간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아 그 속에 동생과 들어가 놀다가 그 마저도 싫증이 나면 마루에 누워 하루 종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밤이면 모기장을 치고 온가족이 다 같이 그 안에서 잠을 잤다. 방학 숙제를 가끔 걱정했지만 여름은 아무 일 없이도 흥겹고 즐거웠다. 


 어른이 되어서 맞는 여름은 그저 덥기만 하다. 매일 나가는 직장이 없으니 여름휴가라는 것도 없고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을 집에서 한다. 더위에 일의 진행이 더뎌지고 그만큼 결제도 늦어질까 오히려 걱정인 여름, 어린 시절 같은 즐거움도 낭만도 없다. 그런데 이 더운 서울에 공기는 탁하고 뿌연 하늘 아래 열이 훅훅 올라가는 대도시 서울에 친구가 온다. 도시사람들이 휴가로 놀러 가는 지리산 뱀사골 근처에 사는 친구인데 말이다. 그동안은 일을 겸해 오는 출장이었지만 올해는 온전히 휴가 여행으로 서울에 온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손님인 친구를 또 다른 서울 친구와 함께 보기로 했다. 


 드디어 서울에 도착한 반가운 여름 손님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묵는 숙소 근방은 몇 년 전 위계에 의한 성폭력 가해자가 무죄를 받아 집회를 하러 온 곳이었다. 내가 그 때의 일을 말하자 친구 역시 여행을 가면 여긴 예전 성폭력 피해지원을 하러 온 곳이구나, 한다면서 우리들이 기억하는 장소는 왜 항상 이런 거냐며 웃었다. 우리들은 부암동 한가한 미술관도 가고 북악산 팔각정에서 한여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뭉게구름도 없는 흐린 하늘 아래 서울은 그날도 안전문자를 보내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시골 쥐와 서울 쥐처럼 우리들은 온종일 싸돌아 다녔다. 이 친구들과 만나면 세상이 요구하는 온갖 정상성에 푹 절여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남편과 자식 이야기로 내내 맴도는 이야기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말해도 되고 점잖은 체하지 않고 까불어도 괜찮다. 제일 까부는 사람이 우리들을 가장 많이 웃게 한다. 그 와중에 친구는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듣다가 내가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콕 짚어 되물어 주었다. 이런 예민하고 날카로운 친구라니.


 밤이 깊도록 지리산과 서울에 사는 여자 셋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활동하면서 겪는 일들, 서울과 지역의 격차들, 각자 느끼는 활동과 경험의 온도는 다르지만 달라서 더 좋았다. 여자 셋 모두 나이도 출신지와 졸업한 학교도 다르고 기혼과 비혼으로 살아온 삶의 경로도 제각각이지만 여성이라는 것 하나 만으로 우리들의 좌표는 여러 곳에서 겹쳐 풍성했다. 그 풍성함엔 분노와 기쁨, 낙관과 낙담이 함께 섞여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하나로 이렇게 많은 것을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 이런 사회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온 여름 손님, 친구는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늦은 밤, 서울은 낮 동안 데워진 바람이 후끈 불고 뒷골목에는 쓰레기가 뒹굴었다. 친구는 지리산 자락 아래 자신이 사는 동네엔 여름이면 쓰레기가 넘쳐 난다면서 놀러온 사람들이 쓰레기도 버리고 강아지도 버리고 간다고 했다. 도시에서 자연 속으로 놀러 간 사람들은 기껏 쓰레기나 버리고 가족 같은 반려견도 버리고 가는데 지리산 동네에서 서울로 온 친구는 반가움과 기쁨만 주고 갔다. 그날 헤어져 돌아오는 서울 밤하늘엔 둥실 보름달이 떴다. 슈퍼문이라고 부르는 크고 밝은 보름달은 붉은 달무리 속에 빛나고 있었다. 서울친구와 나는 달 사진을 지리산 친구에게 전송하며 매해 여름이 되면 보자고 했다. 여름 달 아래 여자들 모임으로 말이다. 뜨거운 여름이 달처럼 풍요로웠다. 친구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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