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다정함이 씩씩함이 되기를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푸르른 날, 친구와 미술관에 갔다. 서울 한적한 동네에 있는 미술관은 옛 그림과 전통공예품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보수공사를 하느라 오랜만에 문을 열었는데 내내 매진이라 전시 막바지 겨우 예매에 성공했다. 젊은 시절 봄과 가을 이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다녔다. 혼자 갈 때도 많았고 당시 어울리던 사람들과 가기도 했다. 서울의 부촌으로 알려진 운치 있는 동네에 있는 미술관은 그 동네의 윤택함에 우아함과 고상함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림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수도 있는 미술관을 스무 살부터 다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 앞에서 그림보다 그 그림이 걸려있는 풍경에 종종 압도되곤 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전유하는 문화, 그들만의 리그에 이방인으로 들어선 것 같았는데 마치 내가 넘보지 못할 것을 넘보고 주제에 맞지 않는 곳에 와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은 오래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완전히 개운하지는 않다. 나는 자주 미술관에서 예술보다 예술을 둘러싼 지형과 자본, 인맥과 학맥의 그물망이 먼저 보였다.
친구는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의 은밀한 분위기가 사라진 미술관은 사람들로 적당히 북적거렸다. 고풍스런 전시실의 은은한 옛 그림을 보며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했다. 그림의 제작연도와 시대적 특징, 화가를 잘 몰라도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친구는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했다. 성 인권 강사이자 나의 타로 선생님이기도 한 친구는 쾌활하고 세상만사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 내가 떠들썩한 활동과 관계들에서 멀어져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 유일하게 자주 보던 사람이었다. 마침 친구도 일하던 단체 활동들을 정리하던 무렵이었다. 익숙한 관계와 무리들에서 멀어지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성급하게 묻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나는 친구보다 감정적인 사람이고 친구는 나보다 객관적인 사람이어서 우리의 온도는 늘 적절했다.
친구와 나는 옛 그림이 걸린 고풍스런 미술관을 나와 근처 공공 미술관에서 요즘 화가가 그린 요즘 풍경을 감상하고 이젠 명소가 된 미술 사학자의 옛집을 방문했다. 정갈한 한옥 뒤뜰엔 풍성한 햇볕 아래 나무들이 짙고 서늘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어디서나 보는 흔한 나무들도 이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지 다들 말끔하고 화사했다. 단정한 정원, 잘 관리된 나무들을 보며 친구와 나는 나무에게도 계급이 있다면서 우리가 나무라면 어디에 있는 나무일까 말하며 깔깔거렸다. 조용한 한옥 정원에서 친구와 나는 돈에 흥청거리는 세상에 대해 말하다가도 자주 고개를 들어 눈부신 계절과 옛집의 고즈넉한 풍경이 아름다워 감탄했다.
하루 종일 옛날 그림과 현대 그림을 감상하고 세련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해가 기울어 고만고만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친구와 동네천변을 걸으며 왜 불광천은 불광동에 있지 않고 또 왜 안양천은 서울에 있는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서 여름밤 천변을 오래 걸었다. 친구는 7월부터 오래전 일하던 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젊었을 적 조바심과 불안이 섞여 일하던 곳으로 가는 심정이 복잡해 보였는데 예전처럼 날 세워 옳고 그른 것을 가르기보다 다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의 대사처럼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면서 자기주장만 고집하기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말처럼 다정함이 세계를 구원할진 잘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다정한 하루였다. 친구가 일을 시작하고 바빠지면 오늘의 다정함이 씩씩함이 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라서 친구 덕분에 나는 서걱거리던 미술관이 다정해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