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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Jul 20. 2016

43세 벨리나

옛날 차 구매 후기

데이빗이 차를 샀다.


예전에 Fusca를 사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한두 달 전 인터넷에서 Belina가 좋은 가격에 나왔다며 어린애처럼 신나 했다. 승차감 좋은 요즘 차를 타고 싶었던 나의 작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이 차를 구입했다.


딱정벌레 차로 알려져 있는 폭스바겐 비틀의 브라질 이름은 푸스카(Fusca)로, 아직도 옛날 모델이 많이 돌아다닌다.


브라질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차들이 아직도 멀쩡하게 거리를 주행한다. 옛날 차 마니아들은 몇 대씩 희귀 모델을 수집한다. 이를 이용한 또 다른 집단은 싸게 헌 차를 구입하여 외관을 가꾸고 엔진을 바꿔 그럴듯한 차로 변신시킨 후 2-4배의 가격으로 재판매하여 이익을 챙긴다. 데이빗도 이런 생각을 품고 있나 보다.


주인있는 옛날 차들이 한곳에 모여 쇼핑몰에 전시된 적이 있다. 가운데 있는 콤비는 옆집 아저씨 차인데 상파울루에 사는 네덜란드 사람에게 구입가격의 3배인 80,000헤알에 팔았단다. 



차 하나 사겠다고 540km 거리를 야간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했다. 


1973년 산 Ford사의 Belina


자동차 정비사인 차 주인 마르코는 몇 년 전 옆집 할아버지에게서 벨리나를 구입해 엔진도 교체하고 페인트도 다시 칠하면서 벨리나를 자식마냥 가꾸고 돌봤다. 84세의 옆집 할아버지 세바스치아웅은 75년에 첫차로 벨리나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제 이 벨리나를 주차할 곳이 없어서 아쉽게도 내놓게 되었다며 차에 대한 큰 애착을 보였다.


인터넷에서 처음 벨리나 광고를 본 날부터 이날까지 2달 넘게 데이빗은 마르코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받아가며 차 상태를 확인했지만, 또다시 차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결국 잔금을 치르고 떠나려고 하는데...



내비게이션을 연결했는데 충전기에 불이 안 들어온다. 

불도 들어오고 다른 전기는 다 통하는데 충전기 꽂는 단자에 문제가 있나 보다. 다행히도 마르코가 자동차 정비사이니 충전기 안에 있는 퓨즈를 밖으로 빼서 어떻게 어떻게 연결을 했다. 내비에 이상은 없으니 길 안 헤매고 집엔 도착하겠지...


에어컨이 없으니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기름 냄새인지 엔진 냄새인지 아무튼 매쾌한 연기 냄새가 차 안에 가득하니 환기는 필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엔진과 연결된 호스가 밖이 아닌 차 안쪽을 향해 놓여 있어서라고...) 가뜩이나 차 때문에 시선집중인데 창문까지 열려 있으니 다들 한 마디씩 던지고 간다. 


하지만 1시간쯤 왔을까, 차가 덜덜덜 거린다. 

데이빗도 불안한지 마르코에게 연락을 했지만 답이 없다. 결국 가장 가까운 정비소를 찾았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 40 헤알에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역시나 다들 차에 관심을 갖는다. 


먼 곳까지 왔으니 집에 가기 전에 관광지를 둘러보려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조수석 문이 안 잠긴다. 요즘 차와 달리 잠금장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문 여는 손잡이를 위로 올리고 닫아야 잠기는데 그 기능이 제대로 안 되는 거다. 30분을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핸들과 브레이크를 묶어놓았다.


다음날 아침 기분 좋게 주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30분도 못 가 차가 퍼졌다. 

30 헤알 어치 가솔린으로 20km를 달렸으니 출발하기 전에 주유소를 갔어야 했는데 데이빗은 뭘 믿고 그냥 지나친 걸까. 다행히 차가 멈춘 곳 앞에 정비소 비슷한 곳이 있었고, 그곳 주인아저씨가 기름통을 들고 우리와 함께 차를 끌고 주유소에 가주었다. 기름 가득 채우고 60km 가는 내내 어찌나 불안하던지... 다행히 문제없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는 자연을 만끽하며 하루를 신나게 즐겼다.


그리고 집에 가려고 시동을 켜는데... 전기가 안 들어온다. 

주차하고 라이트를 안 껐던 것이다. 하하하 이제 헛웃음이 다 나온다. 옆에 있던 차에 가서 배터리끼리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봤지만 실패. 모두가 전력을 다해 차를 밀었지만 실패. 또 다른 차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배터리를 꺼내보자고 했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빡빡한지. 1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배터리를 꺼내 우리 차 배터리와 몽키 드라이버로 연결했다. 제발... 제발... 부르릉~



기름 떨어지고 배터리 나가고 별 경험을 다 해봤다. (감사하게도) 다음날은 문제없이 400km를 주행해서 집에 잘 도착했다. 이 똥차를 왜 사가지고 이 고생을 하는 건지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차값에, 차 찾으러 간 버스비에, 차 등록세에, 차 수리비에, 기름값에, 그리고 문제 해결한다고 쏟은 시간과 에너지까지 하면 나중에 적어도 두배는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연비가 좋다. 리터당 17km 꼴.


데이빗은 신났다. 갑판은 오리지널 흰색으로 바꾸고 여기는 이렇게 꾸미고 저긴 이렇게 하고... 남자들의 차 사랑은 국적이 달라도 똑같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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