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클럽
무더웠던 2020년 7월의 어느 여름날, 홍대 클럽 모데시(Club Modeci)에서 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발만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이태원 클럽 발 집단 감염으로 인한 집합 금지 명령 이후, 춤을 출 수 없는 ‘노 댄스 클럽(No Dance Club)’ 형태로 오랜만에 모데시가 다시 오픈한 날이었다. 5개월 정도 방구석 클러빙만 하다가 처음으로 기어 나온 그 날, 나는 조금 설렜던 것 같다.
코와 입을 마스크로 꼼꼼히 가리고 입장한 클럽은 주말 밤임에도 불구하고 휑-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렇게 휑한 모데시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클럽 입구에서는 신분증 검사와 더불어 QR 체크인과 체온 측정을 진행했다.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했다.
개방된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나도 구석에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아서 몇 개월 새 너무나 변해버린 클럽 풍경을 멍하니 구경했다. 취기가 오른 몇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자, 스태프가 와서 ‘춤추면 음악 꺼야 돼요. 춤추지 마세요.’라며 제지했다. 댄스 클럽에서 춤을 추지 말라고 하는 아이러니가 믿기지 않았다. 올 초만 해도 여기서 신나게 몸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가만히 앉아 있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리듬에 맞춰 발만 까딱까딱할 뿐이었다.
나는 클럽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퇴근하고 고깃집에 둘러앉아 술 한잔 하거나, 운동을 가거나, 취미활동을 하러 갈 때 나는 주로 이태원이나 홍대 클럽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평소의 각 잡힌 내 모습을 내려놓고, 조금은 흐트러져도 되는 곳. 국내 최고의 디제이들이 세련된 감각으로 음악을 트는 곳. 어둡고 뿌연 곳에서 심장이 울릴 정도로 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한 순간에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앉아 클럽을 둘러보다가,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거의 동시에 입에서 뱉은 말은 ‘노잼이다’였다. 할머니 클러버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내 인생에 클럽이 노잼이 되는 날이 다 오는구나 싶었다. 금방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내 안의 일부분이 뚝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나의 청춘을 함께한 클럽들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예감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같은 해, 1994년 오픈한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아이콘과 같은 홍대 클럽 ‘명월관’이 9월 내로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문을 닫지 않은 클럽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악화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1세대 클럽이자 서브 컬처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 사라진다니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명월관은 2022년 자리를 옮겨 망원동에 재오픈을 했지만, 명월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클럽들이 코로나 시국에 폐업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의 댄스 클럽은 정부의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향락의 정도’가 높아 국민 정서에 위배된다는 게 그 이유다. 네덜란드는 이미 오래전에 디제이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바 있고 (Tiesto), 영국은 100개가 넘는 클럽에 정부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급함과 더불어 최근 중등교육자격시험에 ‘디제잉’을 정식 과목으로 포함시키기도 했으며, 독일 베를린은 정부 차원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파티 장소를 물색하는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을 하나의 ‘음악 문화’가 아닌, 부비부비나 하고 원나잇이나 일삼는 ‘일탈과 유흥’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사상 최대의 위기를 겪었던 반면, 비슷한 시기 BTS를 두고 국가 차원에서 병역 연기 및 군 면제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BTS가 월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곡들은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1위 정도는 해주어야 ‘제대로 된’ 음악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좀 더 풍요롭고 멋진 k-culture와 K-pop을 위해서라도, 음악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몇년 전 버닝썬에서의 파렴치한 불법행위와 최근 집단 마약 투여 사건이 클럽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힌 것을 잘 안다. 또, 일부 젊은이의 경솔함으로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도 절대로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고 해서 전체 연예계를 매도하지 않듯이, 일부 안 좋은 사건으로 인해 전체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가 매도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울의 클럽들은 코로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진행했다. 테크노 클럽 버트(vurt)와 파우스트(faust)와 볼노스트 (volnost)는 vfv 클럽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하며 기부금을 모았고, 모데시(Modeci)와 헨즈(Henz)는 <Save the henz & modeci>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러 DJ, 아티스트,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함께한 머천다이즈 제품을 판매했다. 이태원에 있는 클럽과 상점들에서는 ‘Reply, Itaewon’ 과 ‘ITAEWON UNITED’ 티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수익금의 일부를 취약 계층을 위해 용산복지재단에 기부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노력들은 부수적일 뿐이다. 강제 셧다운, 집합 금지명령에 상응하는 지원이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꼭 필요했다고 본다. 호스트바와 감성주점, 헌팅 포차는 지원이 되지만, 클럽들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지원 기준의 모호함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향락’이 생업이며, 누군가에게는 ‘향락’이 정체성이기도 하다. 나는 이토록 향락적인 대한민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앞으로도 쭉 향락적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