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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21. 2023

아무 말도 더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클럽이나 열심히 다니면서 춤이나 추겠지, 뭐."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을까. 그 와의 관계가 정리되었던 건. 아니다. 사실 그 와의 관계는 진작 끝나가고 있었다. 그 말이 트리거가 되었을 뿐. 정말 오랜만에 생긴 썸남이었고 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춤을 추러 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 쪼잔해 보일까 봐 말로는 표현하지 않고 비언어적 표현으로 못마땅한 티를 잔뜩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분위기 좋은 데이트 자리에서 결국 말이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그는 '시간이 많이 남는 상황이라면 나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내 질문에 클럽'이나' 열심히 다니면서 춤'이나' 추겠지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평소 잘 숨겨왔다고 여기던 속마음을 결국 들킨 셈이었다. 그리 견고하지도 않던 사이에는 쉽게 균열이 생겼고 영원한 안녕은 이르게 찾아왔다.  


보통은 이렇게 우울한 날 친구를 찾아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할 테지만 나는 어김없이 클럽'이나' 찾았다. 그 날 찾은 클럽은 이태원에 위치한 링 서울. 들어서자마자 빨간 조명과 함께 딥한 테크노 사운드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바이닐을 열심히 셀렉하고 있는 디제이의 모습과 함께 규칙적인 테크노 비트를 듣고 있으니 거의 명상도 가능할 지경이었다. 점점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멀게만 느껴졌고 곧 마음이 깨끗이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위로의 장소는 없었다. 그래, 이게 다인데. 내가 그에게 열 번도 넘게 클럽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같이 와주었다면 비아냥 거릴 일은 조금도 없었을 텐데. 때로는 문턱 한 번 넘으면 깨지는 편견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 Scene 1

A:  음악을 좋아하신다고요.

나:  네.

A: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나:  장르 안 가리고 다 좋아하는데 전자음악을 특히 좋아해요.

A:  그럼 음악 들으러 자주 다니시겠네요.

나:  네. 그럼요.

A:  클럽...?

나:  네.

A:.......(어두운 표정)


# Scene 2

B: 취미가 뭐예요?

나: 음악 들으러 다니는 거요!

B: 어디로요?

나: 클럽이요.

B: 클럽 다녀요?

나: 네!

B:.......(어두운 표정)



내가 일상생활에서 숱하게 겪는 대화들이다. 아무리 세상 좋아졌다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보수적이어서 클럽에 다닌다고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수적인 집단과 대화를 나눌 때일수록 더욱 당당하게 나의 취미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급격히 어두워지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터 클럽의 이미지가 ‘술, 마약, 섹스’로 점철되어 버린 것일까.


최근 이슈가 된 한 OTT 드라마에서 재벌 2세들이 클럽 룸에서 단체로 마약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서 클럽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미디어에서 클럽을 묘사하는 방식이 매우 편협적이라는 것이다. 보통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클럽은 유흥을 주목적으로 한 대형클럽이다. 주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곳, 헌팅의 메카, 성범죄를 도모하는 곳, 재벌 2세가 일탈하며 마약 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물론 실제로 몇몇 대형 클럽에서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연출하는 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분위기는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대형 클럽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유흥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음악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훨씬 많다. 현재 한국의 여러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다양한 장르 기반의 DJ들이 각자 개성에 맞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으며, 해외의 여러 레이블과 빈번하게 교류하고, 다양한 문화, 예술 전시 및 파티를 개최하는 등 한국 음악 씬의 다양성 유지 및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만큼 음악에 진심인 사람들이 종사하고 서브컬처가 꽃피는 언더그라운드 클럽도 많으니 가끔은 그런 소규모의 클럽들도 균형 있게 미디어에 노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지수’의 직업이 클럽 DJ였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 지수는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갈 줄 아는 다소 자유분방하고 멋진 인물로 그려졌다. 정세랑 작가님이 DJ라는 직업을 긍정적으로 묘사해 주신 것처럼 이제는 미디어나 매체에서도 그만 색안경을 내려놓고 클럽을 바라봐줄 타이밍이 아닐까.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취미가 뭐예요?'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독서요.’, ‘헬스요.’, ‘필라테스요.’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더하지 않고 '클러빙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먼 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클러빙이 취미인 사람들의 애정전선에 이상은 없어야 한다.  

 




*커버 이미지 : 사진: Unsplashalexey turen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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