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람 Oct 21. 2023

언젠가 고백이 있었던 밤

고속도로 추격전


‘음악 소리 좀 줄여주세요.’


어김없이 이웃 주민으로부터 민원이 들어오곤 했다. 집에서 신나게 디제잉을 하다가 볼륨을 아주 잠깐이라도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높였을 때 말이다. 결국 스피커가 아닌 헤드셋으로만 음악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영 기분이 나질 않았다. 몇 번의 민원을 받고 난 후, 나는 이웃 주민의 항의도 없고 스피커 음량도 빵빵하고 심지어 속도감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바로 차였다. 그때부터 내 차는 달리는 클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리는 클럽은 한 결정적 사건으로 인해 폐업을 맞는다.



그날은 동생과 함께 부모님 댁에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DJ Z@p의 2018년도 믹스 셋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 믹스 셋은 DJ Z@p이 뉴욕을 기반으로 한 파티팀이자 에이전시인 ReSolute의 파티에서 튼 라이브 셋으로 내가 높은 텐션을 필요로 할 때마다 자주 듣고는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음악 소리에 어딘가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 들리는 것이었다. 사이렌 소리였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경찰차가 요란하게 빨간 사이렌 조명을 밝히며 따라오고 있었다.



“웬 경찰차? 우리 따라오는 거 아니지?”



과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음주운전도 아니었고 경찰차가 우리를 따라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잠깐 음악 소리를 줄이고 바깥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으나 경찰차가 내 차 번호나 모델을 부르면서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 7년 차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의 자부심이 있었던 나는 경찰이 나를 따라올 리 없다며 곧바로 의심을 거뒀다. 다시 볼륨을 높이고 신나게 리듬을 타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날따라 집중도는 최고였다. Z@p의 믹스 셋은 조금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타이트하게 나를 그만의 음악 세계로 이끌었다. 이곳은 아쉬울 것 없는 나만의 아늑한 클럽이었다. 유럽의 어느 유명 클럽이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직도 경찰차가 요란하게 사이렌 조명을 밝히며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만 했다. 다급하게 음악 소리를 줄여보았다.



‘차 세우세요. 차 세우세요.’



경찰차가 내 뒤를 바짝 쫓으며 차를 세우라고 외쳐댔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지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고 있는 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온갖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며 나는 겁이란 겁은 다 집어먹기 시작했다.



‘차 세우세요!’



짜증스러운 경찰의 외침. 나도 차를 세우고 싶었지만 그곳은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였고 적어도 내 눈에는 차를 세울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달렸고 그렇게 경찰과 나의 추격전은 계속되었다. 나는 분당 어귀까지 계속 달려 한 터널이 지나고서야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나를 따라오던 경찰차는 어느새 두대로 늘어 있었다. 차를 세운 경찰이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앞차 유리문을 세 번 두드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내렸다.



“왜 도주하셨어요?”

“도주요?”

“네 계속 도주하셨잖아요.”

“절 따라오시는지 몰랐어요…“



나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몰랐다. 그저 음악에 심취해 있었을 뿐.



“음주하셨죠? “

“음주요? 아니요! “

“경기도 이천에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전조등을 끄고 달리는 차량이 있다고, 음주운전 차량 같다고요.”



이마를 탁 쳤다. 낮에 차량 점검을 받다가 차량 점검 센터에서 전조등을 꺼놓은 것이었다. 내 차는 전조등 불빛이 워낙 약한 탓에 꺼져 있는지 모르고 그냥 달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찰들은 내가 음주운전을 하고 도주하는 줄 알고 계속 나를 쫓았던 것이다. 무려 경기도 이천에서 분당까지 한밤의 추격전을 벌였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사정을 설명했으나 경찰들은 믿지 않았고 나에게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억울한 마음을 담아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가 찍혀 나올 리 없었다. 경찰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음주 아니네? 잠깐 나와보세요.”



그래도 내가 음주운전이 아닌 걸 믿지 못하겠는지 경찰들은 내게 똑바로 서서 일자로 걸어보라고 말했다. 수치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단지 음악을 크게 들었을 뿐이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양손을 수평으로 뻗고 일자로 걷는 일뿐이었다. 다행히도 갈지(之) 자로 걷지 않고 일자로 단아하게 걸음을 마쳤다. 경찰들은 나의 예쁜 걸음걸이를 보고 비로소 음주 운전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듯했다. 경찰은 이유가 정말 궁금했는지 내게 범칙금을 부과하며 물었다.



“도대체 왜 도주하신 거예요?”

“제가…”




나는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답했다.




으, 음악을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크게 듣다 보니 사이렌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음악을 크게 들었다고만 이야기해도 됐을 텐데, 굳이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는 말은 왜 했던 걸까. 그렇게까지 해야 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때의 나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위급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진심이 그냥 툭 튀어나와 버린 것은 아닐까.



경찰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벌금을 제때 내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한밤의 고속도로 추격전은 끝이 났다. 이후로 나는 절대 자동차 클러빙은 하지 않는다. 운전할 때 전방주시의 의무가 있는 만큼 귀를 열고 잘 듣는 것 또한 안전운전의 의무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날이 내게 꼭 나쁜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다. 이 날은 내게 영화 속 서툰 고백의 한 장면 같이 남아있다. 생전 처음 본 경찰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입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하면서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어 언어화시키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며 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고 살 때가 많은데, 그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거예요.’라고 당당하게 콕 집어 말한 나 자신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고속도로에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일 만큼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 그만큼 구체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절절한 고백을 분당 어귀 갓길에서 반짝이는 사이렌 조명 속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을 뿐이다… 철없지만.



맹세한다. 나는 앞으로 음악을 계속 사랑할 것이며, 전조등과 미등은 충실히 점등할 것이고, 음악은 자동차가 아닌 클럽에서 들을 것이다.




*커버 이미지 : Unsplash의 Kenny Eliason 

이전 08화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