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어느덧 내 언더그라운드 클럽/파티 인생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 내 인생에는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이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얼굴들이 있다. 한창 즐거운 파티가 진행되던 중 소음 문제 때문에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당황하며 음악 소리를 줄이던 디제이의 얼굴이라든가, 이태원 클럽 문 앞 길거리에서 패싸움이 일어났을 때 곤혹스러워하며 싸움을 말리던 클럽 관계자의 얼굴, 또는 디제이 부스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며 음악이 끊긴 나머지 한 겨울에 클러버들이 전부 클럽 밖에서 대기해야 했을 때, 내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우리 지금 왜 나가는 거예요?”라고 묻던 어느 클러버의 얼굴, 코로나 시국 ‘노 댄스 클럽’ 일 때, 춤을 추지 못해 지루함과 아쉬움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채로 앉아서 술을 홀짝이던 어느 클러버의 얼굴 등 정말 이름조차 모르는 그저 남인 얼굴들 말이다.
그래도 이 많은 얼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은 평일 클럽 새벽시간에 본 한 디제이의 얼굴이다. 그 디제이의 얼굴을 본 그날은 평일 술약속이 끝나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뭔가 좀 아쉬운 날이었다. 혼자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한 잔 더 홀짝이고 싶었고,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압구정 로데오의 위치한 한 클럽으로 향했다. 한 때 집 근처에 있어서 자주 갔던 그 클럽에서는 기분 좋은 하우스 음악이 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늘 그렇듯 진토닉 한잔과 함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둠칫둠칫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음악을 즐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클럽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 뿐, 손님은 나만 남았다. 젠장 또였다. 평일에는 클럽에 사람이 적을 때가 많은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마저도 클럽 관계자이거나 디제이들의 지인일 때가 대다수다. 그야말로 ‘썰렁’, 사람이 북적북적하여 그 속에만 있어도 사람들의 열기에 흥이 오르는 주말과는 대단히 상반된 분위기다. 이러면 내쪽에서만 형성된 일방적인 디제이와의 유대감과 이 클럽을 지켜야 한다는 왠지 모를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집에 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집에 못 간 적이 여러 번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늘 반은 디제이의 입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는 지극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광활한 우주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지 않을까. 나는 춤이라도 더 열심히 춰야 할까 싶어 괜히 주변의 눈치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되며 귀에 익은 신나는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왔다. Midnight Star의 No Parking이었다. 익숙하고 흥겨운 리듬에 자연스럽게 디제이 부스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은 무표정한 디제이의 얼굴을 상상했는데 그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디제이 부스 안을 활보하며 온몸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한다기보다 마치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없는 클럽에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던 그의 몸짓과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주변에서 본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의욕에 차서 눈이 항상 반짝반짝하다. 둘째, 진심으로 일을 즐거워해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변에까지 전파한다. 셋째,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잘 헤쳐나간다. 그날 그 디제이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없어도 기가 죽지 않은 이유는 '다른 날 많겠지 뭐'하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그날 평일 새벽 클럽에서 나는 어떤 존경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꼈다. 손님이 없는 클럽에서 진심으로 즐기면서 음악을 트는 디제이 앞에서, 몇십만 명이 쓰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월화수목금퇼' 같은 짤에 좋아요나 누르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내 모습이 디제이 부스 안에 있는데 나와 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삶에서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데 할애해야 하는 것이라면 웬만하면 저런 얼굴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하게 살지 말자. 웬만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가자.
'No parking, baby. No parking on the dance floor.'
귓가에는 댄스 플로어에서 멈춰있지 말라는 가사가 계속 들려오는데 나는 신나게 음악을 트는 디제이의 모습을 보며 진지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나도 내일(tomorrow)과 내 일(job)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에 조용히 클럽을 빠져나왔다. 아마 그때 클럽에는 디제이와 소수의 관계자들만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클럽 안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크고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 찼을 것이고, 그 열기는 여느 주말 못지 않았을 것이다.
* 커버 이미지 : Unsplash의 Antoine J.